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9월호 시(4)와 가을 들꽃

by 김창집1 2025. 10. 3.

 

 

 

그와 노래 김종욱

 

 

언제부터였던가

바람이 불면

시집 한 장씩 넘어가는 소리 들려오고

마른 낙엽 부서지면

펜이 서걱거리는 소리로 들렸던 게

 

어스레해지는 그로서는

달빛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뭇잎 우거진 사이로

빛나는 무엇인가가

경이로울 뿐이었다

 

 



노르웨이 캐빈에서 하지 못한 말 그리고- 김중일

 

 

저녁을 알리는 등불이 하나둘 켜지는

사당동 먹자골목

삼겹살을 먹고 싶다는 그녀의 앞접시에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 놓는다.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살 때 같이 온

청혼이라는 시가 쓰인 손수건을 건네며

오해는 하지 말라는

나의 속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겠지만

 

수년 전 여름 한철 100여 일

유럽 자동차 여행 중

노르웨이 캐빈에서 하지 못했던 그 말

얼마나 후회했는지

 

십여 년 만에 개방된 설악산 흘림골

태평양 건너 호주에서 걸려 온 전화

같이 가자며 좌석 둘을 예약해 달란다

아주 사무적으로

 

무엇이 흘림인가

이름 따라 흐려짐인가

그녀와의 관계는

흘림 그것보다 흘러간 것이다

 

 



빈 대접에 땀방울 통 박태근

 

 

아우 더위

손바닥 부채질

살짝 분 손바람에도 느낀다

흔들리는 가지만 보아도 시원하다

 

한 잎 두 잎 철들려 찾아간 당산나무에

푸짐한 통치마 그늘 아래로

중복 엉덩이 비집고 앉는 날

 

이열치열 덕에

고깃국 한 그릇 후루룩

어허 시원하다

빈 대접에 이마 땀방울

 

 



망덕포구 흰 그림자* 송준규

 

 

오백 오십 리 달려온 데미 샘물

광양만 바다 만나 마침표 찍은

작은 포구

 

돌아오지 못할 죽음의 전장에

끌려가며 남긴 유언

고이 지켜 세상에 알려 달라

하나뿐인 목숨 같은

육필원고

 

겹겹이 명주옷 껴입고

양조장 마루장 뜯어 항아리 속

묵언수행으로 모진 세월 이겨내

찬란한 그 별빛 보여 준

흰 그림자

 

그토록 염원하던 그날 오기 전

여섯 달 먼저 악랄한 전범들의

생체실험 희생양으로

요절한 님

 

북간도에서 백두대간 타고 내려와

호남정맥 큰 산줄기 끝나는 망덕산 기슭까지

뜨거운 만리길 질긴 인연 줄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로 부활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님

 

영원불멸의 두 영혼이 비추는

하안 별빛 스민 망덕산望德山 향해

오늘도 공손히 절 올리는

배알도*

 

---

* 윤동주 유고시집을 발간한 친구 정병욱 교수가 윤동주 시에서 따온 아호 백영白影

** 망덕산의 천자를 배알하기 위해 절하는 형상이라 배알도로 부르게 된 섬진강 하구의 섬

 

 



원망 - 김정원

 

 

중국 서파 천사백 개 남짓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숨 가쁘게 밟고 올라

천지를 담는다

 

감격이 출렁대는 심장에 천지를 담을 수 있다면

남도에 돌아가서도 하늘 연못물이

겨레의 피 되어 내내 나의 몸속에 흐를 텐데……

 

누가 내 허리를 두 동강 냈느냐?

이 못난 것들아”*

 

우리만 갈 수 없는 섬 같은 우리 땅,

북행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길을 에돌아 찾아온, 이리도 먼 가까운 백두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등을 맞대고 서 있는 경계비에 기대어 생각한다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철 따라 맘껏 즐길 수 있는 천지, 이렇게

심장에 담고 돌아갈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한 발짝만 내밀면 닿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품은 북한 천지,

뒤돌아서면 사라질까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애달프게 발목을 붙잡는데

 

그림자 긴 장군봉을 보듬고

사진 한 장 찍어 주고는

내려가자 어서 내려가자 재촉하는

애먼 조선족 가이드가 무담시 섭섭하다

 

어쩔 것인가, 백록담에서 천지까지,

천지에서 백록담까지, 무너진 휴전선을 밟고

손자 손잡고 소풍 가는 훗날을 일구며

아직은 저만치서 바라만 보는 수밖에

 

---

* 문익환, 백두산 천지에서 인용함.

 

 

                           *월간 우리20259월호(통권제447)에서

    *사진 : 가을 들꽃 차례로 - 흰 닭의장풀,  한라돌쩌귀, 솔체꽃, 구절초, 해국, 제주상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