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백 붉은 이유
--현의합장묘에서
생목숨
결딴내듯
툭,
지고 마는
치명의
붉은 낙화
가슴에 찍혀
열두 살
처음 받아든
목이 메는
내 호적

♧ 고사리 장마
해마다 사월이면
마른 젖 탱탱 불어
까맣게 잊은 듯이
가슴에 품은 아이
조막손 제주고사리
젖 달라고 보챕니다

♧ 제주사람
시인 신동엽 눈에
시커멓게 탄 석탄똥 같은
구멍 숭숭 제주 돌이
제주사람 같았나 봐
그것은 구제받아야 할
발악 아니면
기진맥진 같은*
---
*신동엽 시인의 제주기행 산문에서

♧ 섯알오름*
감지되던 예감 앞에
더듬이 세운 새벽빛
호명되는 그 이름이 싸늘하게 감겨온다 그 누구 이름일까 휘둘러 살피는데 삽시간 꽂히는 눈빛 등 떠밀며 꽂히는 눈빛 세워 앉은 무릎 풀며 휘청 나설 때 아, 달빛 눈빛 푸른 저 새벽달 최후의 증인처럼 졸졸 따라 나선다 트럭에서 멀어지는 한림항 갯내음 신사동산** 소롯길 지그재그 해무리 그 속으로 그리운 가족사 드문드문 지나고 죽음의 예고편처럼 길이 마냥 끌려온다 기막힌 사연들이 타전하듯 속삭일 때 귓속말 뚝 끊기고 길도 이젠 끊기고
지상의 마지막 인사
흘려놓은
신발
한
짝
---
* 섯알오름 :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예비검속자들을 집단 학살 암매장한 곳으로 제주 대정읍에 위치한 오름.
** 신사동산 : 제주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

♧ 바다는 안 보여요*
메마른 슬픔이
지워지지 않는다
포구를 지나온 날
부풀어 오른 흰 달처럼
종달리 마을 안에는
수국만 피었다
떠나간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기어이 잊으려는 듯
바람도 잠잠했다
바다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
* 종달리 마을 안에 있는 카페 이름.
*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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