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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11)

by 김창집1 2025. 10. 2.

 

 

동백 붉은 이유

    --현의합장묘에서

 

생목숨

결딴내듯

,

지고 마는

 

치명의

붉은 낙화

가슴에 찍혀

 

열두 살

처음 받아든

목이 메는

내 호적

 

 



고사리 장마

 

 

해마다 사월이면

 

마른 젖 탱탱 불어

 

까맣게 잊은 듯이

 

가슴에 품은 아이

 

조막손 제주고사리

 

젖 달라고 보챕니다

 

 



제주사람

 

 

시인 신동엽 눈에

시커멓게 탄 석탄똥 같은

구멍 숭숭 제주 돌이

제주사람 같았나 봐

그것은 구제받아야 할

발악 아니면

기진맥진 같은*

 

---

*신동엽 시인의 제주기행 산문에서

 

 



섯알오름*

 

 

  감지되던 예감 앞에

  더듬이 세운 새벽빛

 

  호명되는 그 이름이 싸늘하게 감겨온다 그 누구 이름일까 휘둘러 살피는데 삽시간 꽂히는 눈빛 등 떠밀며 꽂히는 눈빛 세워 앉은 무릎 풀며 휘청 나설 때 아, 달빛 눈빛 푸른 저 새벽달 최후의 증인처럼 졸졸 따라 나선다 트럭에서 멀어지는 한림항 갯내음 신사동산** 소롯길 지그재그 해무리 그 속으로 그리운 가족사 드문드문 지나고 죽음의 예고편처럼 길이 마냥 끌려온다 기막힌 사연들이 타전하듯 속삭일 때 귓속말 뚝 끊기고 길도 이젠 끊기고

 

  지상의 마지막 인사

 

  흘려놓은

 

  신발

 

  한

 

  짝

 

---

* 섯알오름 : 625전쟁이 발발한 1950, 예비검속자들을 집단 학살 암매장한 곳으로 제주 대정읍에 위치한 오름.

** 신사동산 : 제주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

 

 



바다는 안 보여요*

 

 

메마른 슬픔이

지워지지 않는다

 

포구를 지나온 날

부풀어 오른 흰 달처럼

 

종달리 마을 안에는

수국만 피었다

 

떠나간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기어이 잊으려는 듯

바람도 잠잠했다

 

바다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

* 종달리 마을 안에 있는 카페 이름.

 

 

                 *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