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덥던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지만
태풍다운 태풍 한 주제 없이
어김없이 추석날은 찾아왔다.
올해는 트럼프의 뜬금없는 관세 정책으로
세상이 뒤숭숭해지고 불안정한 날들이 흘러간다.
딱이 해결되는 것은 없고, 희망 반 절망 반
기약 없는 추측만 무성한 가운데 시간만 덧없이 흘러가고
아무리 그럴지라도 올 추석은 우리가
바쁘다고, 아니면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이야 죽이 되든 말든
외면하며 살고 있진 않는지
조용히 되새겨보며,
이웃을 보살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추석(秋夕) - 신사/박인걸
고향은 좌표가 아니라 흔적이기에
길 위에 길들이 움직인다.
눈꺼풀은 안쪽에만 남아 있는 지층이고
차창에 달라붙은 시간은 부서져 흩어진다.
달은 원이 아니라 상실의 구멍이며
모두가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사라진 얼굴들을 불러내지만
달빛은 번역되지 못한 말처럼 흘러내린다
추석상에 차려진 그릇들은 무덤같고
시간이 굳어 응고된 돌덩이다.
소원은 기도를 모방하다가 끊기고
국물은 울음보다 느리게 증발한다.
추석은 명절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방식이고
만남과 헤어짐은 동시에 겹쳐져
우리를 서로 낯설게 껴안게 할뿐이다.

♧ 추석 밑 - 윤의섭
가을바람이 슬쩍슬쩍
배나무밭으로 기어든다
누렇게 익은 배가
나무에서 흔들흔들 흔들거린다
윤기 흐르는 촉촉한 잎이 두툼하고
껍질 두툼 나무줄기 향기를 뿜는다
얼마나 달까
숙성도를 재는 손길
과수원주인이 두근거린다
태평한 올해 추석
오곡백과 진설하여
조상숭배 후손번영 기원하련다.

♧ 추석엔 -조용순
갈바람 살랑이며 가슴으로 불어와
황금물결 일렁이는 곳으로 불러가면
그곳엔 잊지 못할 유년의 그림들이
물결치며 오라 하네
그리움 목에 차서 불러보는 이름들이
동구 밖으로 마중 나오고
고향 지기들과 혈육의 정이
갈꽃 한 다발 목에 걸어주면
한가위 달빛은 함박웃음으로 포용해 주었지
흐르고 또 흐른 많은 세월이
변하고 또 변하게 한 얘기들도 많지만
내 안에 고운 정으로 남아 있는
추석의 그림은 바래지 않고
오늘도 아름답게 남아 있어
그리운 이들과 맑은 달빛 아래
손에 손잡고 둥근 정이 돌고 돌며
풍요로운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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