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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14)

by 김창집1 2025. 10. 8.

 

 

십시일반十匙一飯

 

 

눈만 뜨면 곶자왈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고

다시 눈을 뜨면 수술 자국처럼 한라산 허리에 도로가 생기고

또 눈을 뜨면 청정한 바다에 잿빛 삼발이가 물길을 가로막고

다시 눈을 뜨면 날개 다친 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가쁜 숨 몰아쉬고

 

한라산을 빚고 스스로 섬이 된 설문대할망이 앓고 있다

갈래갈래 몸이 찢겨나니 마음도 시름시름 몸을 떠났다

넋이 났으니 넋을 들여야 하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그만 길을 잃었다

산도 바뀌고 물도 바뀌고 나무도 배어 없어지니

숨도 그때 그 숨이 아니다 막힌다 컥컥 막힌다

 



굿이라도 해야겠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는

앞서가신 어르신의 말씀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그림쟁이 글쟁이 춤쟁이 소리쟁이, 쟁이란 쟁이는 모두 모여

몸에 난병 마음에 난 병을 치유하는 병굿을 해야겠다

죽은 땅을 살리고 죽은 바다를 살리고 죽은 나무를 살리는,

죽은 새들도 이리 와서 모여라, 모다들어 치병의 환생굿을 해야겠다

 

하늘 배경으로 큰대를 세우고 동서남북 사당클을 매자

천지 혼합 제이르는 이승현이 천지 인왕 신자리다

불복의 산, 머리 없는 산머리는 엄문희가 서고

하늘길 발루는 댓잎 푸른 큰대는 강문석을 세우고

동서남북 사당클은 고경대를 매고 부이비 김수오를 매자

 



하늘 가운데는 휘영청 김수범을 달고

없는 듯 있고 있는 듯 없는 달빛 아래 외진 곳엔

체인 진 카이젠, 거스톤 손딩 퀑을 앉히자

 

바다 가운데는 고승욱을 띄워 어둠을 도리자

부정 서정한 온갖 새들은 김영화가 도리고

어둠에 갇혀 길 잃은 새들은 고길천이 도리자

산을 가슴에 안고 오름을 마음에 담은 이윤엽이 저기 있다

오색 기메는 홍진숙을 달고 지전 살장은 양미경을 달자

이승과 저승, 하늘과 땅 어간에 초신길을 닦자

이승 저승도 아닌 미여지뱅뒤엔 강동균 이명복 이겸을 세우고

바다 건너 섬 초입 올레 밖 삼도전거리엔 강정효를 세우자

그린씨를 닮은 일만팔천 신들의 오리정 길엔 양동규를 놓고

김옥선이 어화둥둥 비비둥둥 맞이하게 하자

물길로 오는 영신일랑 박정근이 맞이하게 하자

진광대왕에서 오도전륜대왕까지 열시왕 위패엔 문정현을 세우자

 

바당 표정이 섬의 얼굴이고 섬사람들의 마음이니

상단궐 젯자리엔 바당을 앉히고 중단궐 젯자리인 곶자왈을 앉히자

하단궐 젯자리엔 오름이며 사람을 앉히자

안자리 깊숙한 자리엔 강정 구럼비를 놓자

구럼비 꽃자리에 조성봉 홍보람을 피우고 그 위에 송동효를 놀게 하자

상단궐엔 부서지는 노순택을 앉히고 고요한 김용주를 앉히자

물속에선 이성은도 놀게 하고 젯자리 앞자리엔 김영훈을 앉히자

동백낭 아랜 허은숙을 놓고 아리따운 고원종을 놓자

중단궐엔 먼저 가신 어머님 같은 한상범을 놓자

임형묵에서 시작하여 고예현의 바당을 세우자

신의 얼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이유미도 함께 세우자

곶자왈 굴형엔 고경화 허윤회를 세우고 김지은 이종후를 다시 세우자

오름으로 가는 신들의 길은 이지유가 열고

여기저기 흩어진 뒷정리는 홍덕표가 제격이다

여기 신자리에 이름 올리지 못한 칭원한 넋들은

흰 종이에 흰 글씨로 백소지권장 올리니 하다 서러워 말자

 



어디 보자 한 번 둘러보자

이제야 심이로구나 섬 다운 섬이로구나

산이 살아 있고 바다가 살아 있고 사람이 살아 있는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신칼치마에 귀신 잡는 칼이 없어도 이게 제주로구나

욕망에 허덕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참 제주가 여기 모여 있구나

고운 밥 낭도고리에 술을 꽂아 시문 신냥 어시문 어신냥

십시일반 나누고 오순도순 베풀어 여기까지 왔구나

둘러보니 이게 바로 자연다운 자연이고 사람다운 삶이로구나

아하, 그렇구나 이게 우리가 살아야 할 삶다운 삶이로구나

사람 목숨만 목숨이 아니라 하늘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곶자왈에도 나무에도 지푸라기 하나에도 다 목숨이 있구나

그들이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내가 살아 숨 쉬는 거구나

내 숨과 그들의 숨이 둘이 아닌 하나구나

그렇구나 이게 우리고 이게 제주로구나

우리가 오롯이 물려줘야 할 제주의 가치로구나

 

 

                   *김수열 시집 날혼(삶창시선,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