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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은 때가 있다'(10)

by 김창집1 2025. 10. 9.

 

 

고냉이찰흙

 

 

엔간한 비바람쯤 이골이 난 섬의 서쪽

옹기마을 신평리엔 연못도 항아리 같다

긴 세월 흙 파낸 자리,

고향 하늘 앉은 못물

 

저들은 제주점토를 고냉이찰흙이라 한다

부뚜막 기웃대다 혼쭐난 들고양이

홧김에 앙갚음하듯 싸지른 똥만 같은

 

그 흙으로 구웠겠다

잘 여문 이 물허벅

어쩌다 허벅장단 팽강팽강 피어나면

어머니 춤사위 따라 별자리도 휘어졌다

 

 



송악 혹은 소밥나무

 

 

올봄엔 고백 못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일주일에 사나흘 그마저 무급휴가

오늘은 나도 너처럼 마스크를 쓰고 왔다

 

네 모습 바라보니 영락없는 밭갈쉐다

워어하면 밭을 갈고, “어허하면 멈춰 서던

아버지 오랜 술친구 얼룩배기 부렝이야

 

늙은 쉐 콩 주민 무사 말덴 허크냐?

부리망 씌워놔도 훔쳐보는 소밥니무

그 속담 저도 안다는 듯 주등이 젖는 소야

 

아무렴, 살아있으니 그게 청춘 아닌가

코로나 막막한 세상 잠잠해질 무렵이면

저토록 푸르른 송악 외면하지 못하겠다

 

 



물꾸럭

 

 

사리 때 바다에 들면 친정보다 낫다며

하우스농사 틈틈이 테왁을 띄우는 그녀

 

냉장고 문만 열어도 갯내음 물씬하다

수심 34미터 할망바당 바위틈

감태와 돌미역 사이 구젱기를 따다가

물꾸럭 이게 웬 떡이냐

단숨에 나꿔챈다

 

상퉁이, 상퉁이 뒈쓰라”*

외마디 비명 같은,

먹물 뿌릴 새도 없이 허공을 버둥대다

여덟 발 죽기 살기로 달라붙는 흡반들

 

물때는 해녀의 시간, 물숨은 목숨 같은 거

시아버지 제사상에 전리품처럼 오른 문어

몇 잔술 거나한 그림자

파도처럼 다녀가실라

 

 

*‘상투 뒤집어라라는 제주어. 문어는 상투가 뒤집히면 힘을 못 쓴다.

 

 

 

소나기

 

 

우산도 없이 후다다닥

감귤밭 훑고간다

한 줌 햇살도 금쪽같은 극조생 감귤나무

국지성 햇살 도둑놈

잡아라, 저놈 잡아라

 

 



너븐숭이

     -애기무덤

 

 

신들이 섬을 비운 신구간 무렵이었다

느량 바람이 사는 너븐숭이 빌레왓

여남은 애기구덕만한

돌무덤 생겨났다

 

옴팡밧 학교운동장 당팟 저 학살터들

죽은 어멍 젖을 빨던 아기도 이젠 세상 뜬

이 땅에 그 누가 남아 저들을 달래줄까

 

중얼중얼 주문처럼 자장가 불러본다

애기구덕 흔들다 끄덕끄덕 나도 졸던

43땅 설룬 애기야

자랑자랑 웡이자랑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은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