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냉이찰흙
엔간한 비바람쯤 이골이 난 섬의 서쪽
옹기마을 신평리엔 연못도 항아리 같다
긴 세월 흙 파낸 자리,
고향 하늘 앉은 못물
저들은 제주점토를 고냉이찰흙이라 한다
부뚜막 기웃대다 혼쭐난 들고양이
홧김에 앙갚음하듯 싸지른 똥만 같은
그 흙으로 구웠겠다
잘 여문 이 물허벅
어쩌다 허벅장단 팽강팽강 피어나면
어머니 춤사위 따라 별자리도 휘어졌다

♧ 송악 혹은 소밥나무
올봄엔 고백 못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일주일에 사나흘 그마저 무급휴가
오늘은 나도 너처럼 마스크를 쓰고 왔다
네 모습 바라보니 영락없는 밭갈쉐다
“워어~”하면 밭을 갈고, “어허”하면 멈춰 서던
아버지 오랜 술친구 얼룩배기 부렝이야
늙은 쉐 콩 주민 무사 말덴 허크냐?
부리망 씌워놔도 훔쳐보는 소밥니무
그 속담 저도 안다는 듯 주등이 젖는 소야
아무렴, 살아있으니 그게 청춘 아닌가
코로나 막막한 세상 잠잠해질 무렵이면
저토록 푸르른 송악 외면하지 못하겠다

♧ 물꾸럭
사리 때 바다에 들면 친정보다 낫다며
하우스농사 틈틈이 테왁을 띄우는 그녀
냉장고 문만 열어도 갯내음 물씬하다
수심 3~4미터 할망바당 바위틈
감태와 돌미역 사이 구젱기를 따다가
물꾸럭 이게 웬 떡이냐
단숨에 나꿔챈다
“상퉁이, 상퉁이 뒈쓰라”*
외마디 비명 같은,
먹물 뿌릴 새도 없이 허공을 버둥대다
여덟 발 죽기 살기로 달라붙는 흡반들
물때는 해녀의 시간, 물숨은 목숨 같은 거
시아버지 제사상에 전리품처럼 오른 문어
몇 잔술 거나한 그림자
파도처럼 다녀가실라
*‘상투 뒤집어라’라는 제주어. 문어는 상투가 뒤집히면 힘을 못 쓴다.

♧ 소나기
우산도 없이 후다다닥
감귤밭 훑고간다
한 줌 햇살도 금쪽같은 극조생 감귤나무
국지성 햇살 도둑놈
잡아라, 저놈 잡아라

♧ 너븐숭이
-애기무덤
신들이 섬을 비운 신구간 무렵이었다
느량 바람이 사는 너븐숭이 빌레왓
여남은 애기구덕만한
돌무덤 생겨났다
옴팡밧 학교운동장 당팟 저 학살터들
죽은 어멍 젖을 빨던 아기도 이젠 세상 뜬
이 땅에 그 누가 남아 저들을 달래줄까
중얼중얼 주문처럼 자장가 불러본다
애기구덕 흔들다 끄덕끄덕 나도 졸던
4․3땅 설룬 애기야
‘자랑자랑 웡이자랑…’
*문순자 시조집 『가끔 섬으로 돌아가 울고 싶은 때가 있다』(작가,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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