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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10. 12.

 

 

으름난초 여연

 

 

어두운 숨소리 아래

썩은 시간을 품은 땅속에서

한 줄기 빛을 잡아당긴다

 

마른 뼈로 세운 막대기에

온 생을 걸어 흰 불을 붙인다

꽃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숨결을

다 보내고 쓰러지는 나무처럼

내년을 기약하지 않는

오직 한 번의 폭풍

 

발자취는 많으나 흔적은 없다

삶이란 타오르는 등불

제 자리에서 재가 되어도 좋다

 

작은 뿌리도 하늘을 가리지 않으며

다 타 버린 뒤엔 바람도 모르는

깨끗한 빈자리

 

 



드랑게 1 우정연

 

 

즈엄니 땅에 묻고 오자마자

세 딸년은 온 살림을 끄집어내 불에 꼬시르고

아들놈은 농짝을 깨부수고 있드랑게

뭣이 그리 급허다고

 

팔도 것을 다 뒤집고 끄집어 내놓고

단지 속, 안 입는 헌 옷 속

헤집어서 집어 떤지고 거기서 돈 한 푼 나오면

하하호호 웃니라고 바쁘드랑게

썩을 노무 새끼들

 

그 꼬라지를 보던 이웃 할매

아이고 저 노무 새끼들 믿을 거 항개 없구마잉

 

동네 할매 다섯이 작당을 허고

각자 이녁 집에 꽁꽁 숭키 놓은 돈 찾아

항꾸네 읍내 장으로 우르르르르

 

짜장면을 묵고

완피스, 부라자도 사고

빨간 립스틱도 바르고

꼽실꼽실 빠마도 허고

눈썹 문신까지 해불고

멋쟁이가 되야부렸드랑게

 

동네 사람들이 싹 다 입을 삐쭉거리드랑게

난리가 나부렀제 뭐

아이고 저 할망구들 바람났구마잉

 

 



함박꽃 위인환

 

 

손이 귀한 집 맏며느리

뙤약볕 맞으며

거름 주고 가꾸어도

열리지 않는 고추

딸 둘을 낳고

서릿발 눈총에

밤마다 뻐꾸기처럼 울었던,

벙어리 삼년

텃밭에 열린 고추

고방 열쇠 물려주며

할머니 얼굴에 핀.

 

 



갈대 이기헌

 

 

누군가가 저 언덕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 질 녘부터 해 뜰 녘까지

애타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에게로 가서 얘기를 들어 봐야겠다

그의 흐트러진 영혼을 보듬어 주어야겠다

 

 



몽탁 선생 대화기 5 이동훈

 

 

아무것도 안 하고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괜히 철학자 같다

근래, 거리의 철학자를 만나곤 한다

그 고독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선생이란 호칭이 나온다.

오늘만 해도 댑싸리 선생, 망초 선생을 차례로 만나 통성명을 했다.

 

댑싸리 댑 선생은 희귀 성이다.

댑 하니 뎁스가 떠오른다.

프로야구를 보면, 1군과 2군의 실력 차가 없을수록 텝스가 강화된다고 하는데

그 뎁스에도 끼지 못하는 댑싸리 생각하듯

몽탁 선생은 콧구멍으로 싸한 것이 올라온다는 표정이다.

 

이름이 같은 쉽싸리 쉽 선생도 흔한 성은 아니다

쉽 하니 쓰윕이 생각난다.

일방적으로 이기거나 일방적으로 지는 것이 쓰윕이라는데

언제든 지는 쪽의 쉽사리 응원하듯

몽탁 선생은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든다

 

그런 몽탁 선생을 딱하게 보는 댑싸리 속도 모르고

망초 망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없냐고 누가 물을 것도 같은데

그건 댑싸리 쉽싸리 말할 문제는 아니라고

이파리 한 장 내놓은 거리의 철학자가 일러 준다

당신 또한 오래오래 고독 속에서 깨쳐야 하는 거라고.

 

 

                   *월간 우리20259월호(통권 제44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