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으름난초 – 여연
어두운 숨소리 아래
썩은 시간을 품은 땅속에서
한 줄기 빛을 잡아당긴다
마른 뼈로 세운 막대기에
온 생을 걸어 흰 불을 붙인다
꽃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숨결을
다 보내고 쓰러지는 나무처럼
내년을 기약하지 않는
오직 한 번의 폭풍
발자취는 많으나 흔적은 없다
삶이란 타오르는 등불
제 자리에서 재가 되어도 좋다
작은 뿌리도 하늘을 가리지 않으며
다 타 버린 뒤엔 바람도 모르는
깨끗한 빈자리

♧ 드랑게 1 – 우정연
즈엄니 땅에 묻고 오자마자
세 딸년은 온 살림을 끄집어내 불에 꼬시르고
아들놈은 농짝을 깨부수고 있드랑게
뭣이 그리 급허다고
팔도 것을 다 뒤집고 끄집어 내놓고
단지 속, 안 입는 헌 옷 속
헤집어서 집어 떤지고 거기서 돈 한 푼 나오면
하하호호 웃니라고 바쁘드랑게
썩을 노무 새끼들
그 꼬라지를 보던 이웃 할매
아이고 저 노무 새끼들 믿을 거 항개 없구마잉
동네 할매 다섯이 작당을 허고
각자 이녁 집에 꽁꽁 숭키 놓은 돈 찾아
항꾸네 읍내 장으로 우르르르르
짜장면을 묵고
완피스, 부라자도 사고
빨간 립스틱도 바르고
꼽실꼽실 빠마도 허고
눈썹 문신까지 해불고
멋쟁이가 되야부렸드랑게
동네 사람들이 싹 다 입을 삐쭉거리드랑게
난리가 나부렀제 뭐
아이고 저 할망구들 바람났구마잉

♧ 함박꽃 – 위인환
손이 귀한 집 맏며느리
뙤약볕 맞으며
거름 주고 가꾸어도
열리지 않는 고추
딸 둘을 낳고
서릿발 눈총에
밤마다 뻐꾸기처럼 울었던,
벙어리 삼년
텃밭에 열린 고추
고방 열쇠 물려주며
할머니 얼굴에 핀.

♧ 갈대 – 이기헌
누군가가 저 언덕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 질 녘부터 해 뜰 녘까지
애타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에게로 가서 얘기를 들어 봐야겠다
그의 흐트러진 영혼을 보듬어 주어야겠다

♧ 몽탁 선생 대화기 5 – 이동훈
아무것도 안 하고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괜히 철학자 같다
근래, 거리의 철학자를 만나곤 한다
그 고독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선생이란 호칭이 나온다.
오늘만 해도 댑싸리 선생, 망초 선생을 차례로 만나 통성명을 했다.
댑싸리 댑 선생은 희귀 성이다.
댑 하니 뎁스가 떠오른다.
프로야구를 보면, 1군과 2군의 실력 차가 없을수록 텝스가 강화된다고 하는데
그 뎁스에도 끼지 못하는 댑싸리 생각하듯
몽탁 선생은 콧구멍으로 싸한 것이 올라온다는 표정이다.
이름이 같은 쉽싸리 쉽 선생도 흔한 성은 아니다
쉽 하니 쓰윕이 생각난다.
일방적으로 이기거나 일방적으로 지는 것이 쓰윕이라는데
언제든 지는 쪽의 쉽사리 응원하듯
몽탁 선생은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든다
그런 몽탁 선생을 딱하게 보는 댑싸리 속도 모르고
망초 망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없냐고 누가 물을 것도 같은데
그건 댑싸리 쉽싸리 말할 문제는 아니라고
이파리 한 장 내놓은 거리의 철학자가 일러 준다
당신 또한 오래오래 고독 속에서 깨쳐야 하는 거라고.
*월간 『우리詩』 2025년 9월호(통권 제447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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