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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의 시(9)

by 김창집1 2025. 10. 14.

 

 

숨은 아이를 찾으러 숲으로 간다

 

 

아이가 숲으로 달려가 숨는다

산 둘레로 창살처럼 비가 내린다

총포처럼 천둥소리가 들린다

어디에 숨었니

장난하지 말고 나오렴

내가 입은 옷은 초록옷

내가 든 건 마법 막대기

대나무숲 어딘가 누운 아이야

비창살을 맞으며 떨지 말고

바다마을로 내려가자

불탄 집은 버려두고 나와 함께

바다를 보러 가자

숨은 아이를 찾는 나는

천둥을 일으키는 요정

무서워 떠는 아이는

산마을에 사는 아이

아이를 찾는 나는

집을 태우는 초록의 군인

무서워 떠는 아이는

소개된 마을을 지키는 지박령

칠십 번의 겨울을 넘긴 오늘

빌레가름* 가는 길에

숨은 아이를 찾으러

숲으로 들어가는 나는

산마을을 떠나온

아이들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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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한남리에 있었던 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섬의 고리

 

 

가시리 역기남도*

할아버지 봉분 한가운데

고사리가 솟아나 있다

 

하늘 향해 뻗은 줄기 끝

동그랗게 말린 고리 모양

무엇을 걸어 잇고 싶어

고리를 만들었을까

 

섬이 화염에 무너진 시대

불타는 오름 재가 된 마을

그 속에 뿌려진 종자들

그 위에 뿌려진 골분骨粉

 

아래 세상에서 자라

위의 세상을 걸어

땅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서 자라나

땅 아래 사람들과 땅 위 사람들을

이어주는 고리들

 

사람들이 살던 자리

채워진 무덤들

무수한 고리들이 솟아나 있다

잡아 끌어올리는데

지켜보던 까마귀들이

악 악 비명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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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사라진 마을.

 

 



까마귀 마을

 

 

망오름* 공동묘지

벌초를 끝내고

봉분에 절을 하는데

까마귀들이 돌담에 내려앉아

비명을 지른다

 

그들을 까맣게 태운 건

오래전 산의 불길

잿더미 속에 자라

세상 높은 곳으로 날아가고파

까만 날개를 퍼덕였을까

 

마주친 눈 속에 숨어 있는

지워지지 않은 불의 공포

검은 동공에 비친 건

산에 올라온 까마귀 토벌군

주위엔 봉분으로 지은 집들이

마을을 이루는데

 

산바람이 불자 나무에서

붉은 불들이 떨어진다

까악까악 비명이

온 산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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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표선면 토산리 소재 오름. 오름의 남서측이 모두 공동묘지로 되어 있다.

 

 



동백冬魄

 

 

봄날을 기대하며 걷는 사월

하늘에서 백들이 내려오네

하얗게 빛나는 백

잃어버린 몸을 찾아 내려오네

크고 투명한 백하나

얼굴 위로 스며들면

전설이 된 겨울이 다시 돌아오네

들이 바람에 실려 다시 걷는 길

해진 옷에 고무신을 신고

상처 입은 육신을 끌고 걸었던 길

타버린 마을을 뒤로 한 채

잔인한 겨울을 버티려

찾아간 땅속 세상

큰넓궤를 향해 걷는 사월

잊힌 시대를 기억하려

다시 돌아온 겨울의 길옆

땅을 향해 꽃들이 피었네

망자亡者들의 피로 피어난 붉은 동백

들이 앉아 스며드네

잃어버린 육신 대신

동백冬魄으로 다시 살아나네

붉은 마을이 길옆에 열리네

 

 



오동도 동백꽃

 

 

동백꽃이 붉은 이유는

땅속 깊은 자리

오래 전 해방구를 외치다 쓰러진

사람들의 가라앉은 체액

혈화로 피어나는 거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도서출판 북인,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