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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시(완)

by 김창집1 2025. 10. 15.

 

 

삽시揷匙

 

 

  제주섬 바람소리엔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 일어나 아우성치는 이백육 마디마디

  사월의 제단 앞에선 산목숨이 죄만 같아

 

  애비 아들 보내는 날 가슴 치며 울던 바다 육십 년만에 찾아온 육신 젓갈 삭듯 녹아내려 생살점 떼어 내듯이 봄꽃 벌써 지려 하네

 

  머리 하나에 팔다리 맞춰는 놓았다만 내 남편 내 아들 맞기는 한 것이냐

  어디다 하소를 할까 혼절했던 시간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절뚝이는 저승길 열두 대문 훠이훠이 고이 넘어 가시라

  어머니, 고운 멧밥에

  떨며 꽂는

  숟가락

 

 



성산포의 달

 

 

물때 따라 육지 길이

열렸다 닫히면

슬픈 언약처럼

달이 떠오르죠

터진목*

모래 언덕에

순비기꽃 피어나죠

 

이생의 종착지에

흩어지는 비명 하나

울음이 울음 물고

속절없이 떠돌죠

 

달빛이

파도에 젖어

흐느끼는

성산포

 

---

* 43 때 제주도 성산읍 주민들이 군인 경찰에 끌려와 무참히 학살된 곳.

 

 



을씨년스러운 날

 

 

쪽집게 예언처럼 푸른 혀 내밀던

그해 첫날 햇살은 유난히 화창했네

 

어쩌면 반전의 기운,

불길한 징조였을까

 

시일야 방성대곡 주저앉은 그 울음

역사의 수레바퀴 돌고 도는 그 자리에

체면도 염치도 없이 도용하는 짓이라니

 

혀 깨물 용기도 없이 세 치 혀를 나불거리며

국민을 등지고 간, 애국 아닌 매국의 길

 

수난의 시간 속에서

촛불은 다시 타네

 

 



목숨

 

 

마을이 불타던 날 산으로 뛰었습니다 두 살짜리 아이 업고 담요 한 장 덮어 씌워, 스물둘 신혼의 꿈도 그 때 모두 불탔습니다

 

쌀 한 되 간장 한 병 산사람에게 준 죄로 콩밭 소나무밭 벌레처럼 기어서 산으로 숨었습니다 무자년 가을입니다

 

후다닥 피해 달아난 남편소식 끊어지고 몇 날을 헤매었을까 산에 눈, 내립니다 두 손에 내린 곤밥*을 와들와들 삼켰습니다

 

산에서 잡혔다고 산사람이 되었습니다 전기고문 비행기고문 팔 꺾여 허리 부러져, 가는 숨 늘어진 아이 품에 안고 울었습니다

 

배에 태워 어딜 가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무릎에 눕힌 아이 숨이 곧 멎을 것 같아 코에다 손을 대보면 아뜩한 숨소리

 

새끼가 무슨 죄냐 들여준 죽물, 서너 번 입에 넣었더니 똘, , , 깍 내리는 소리 이승의 마지막 난간에 간신히 매달려

 

배롱이 눈 떴습니다 살아있다는 신호처럼 그 아이 살아남아 지금, 일흔입니다 그 세상 살아서 넘은 질기디질긴 명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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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밥을 이르는 제주어

 

 



하직下直

  -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내 손으로 너를 묶고

네 손으로 나를 묶고

 

건너갈 저 세상

벼랑 끝 이 세상

 

뒤돌아

부르는 이름

어머니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