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삽시揷匙
제주섬 바람소리엔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 일어나 아우성치는 이백육 마디마디
사월의 제단 앞에선 산목숨이 죄만 같아
애비 아들 보내는 날 가슴 치며 울던 바다 육십 년만에 찾아온 육신 젓갈 삭듯 녹아내려 생살점 떼어 내듯이 봄꽃 벌써 지려 하네
머리 하나에 팔다리 맞춰는 놓았다만 내 남편 내 아들 맞기는 한 것이냐
어디다 하소를 할까 혼절했던 시간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절뚝이는 저승길 열두 대문 훠이훠이 고이 넘어 가시라
어머니, 고운 멧밥에
떨며 꽂는
숟가락

♧ 성산포의 달
물때 따라 육지 길이
열렸다 닫히면
슬픈 언약처럼
달이 떠오르죠
터진목*
모래 언덕에
순비기꽃 피어나죠
이생의 종착지에
흩어지는 비명 하나
울음이 울음 물고
속절없이 떠돌죠
달빛이
파도에 젖어
흐느끼는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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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때 제주도 성산읍 주민들이 군인 경찰에 끌려와 무참히 학살된 곳.

♧ 을씨년스러운 날
쪽집게 예언처럼 푸른 혀 내밀던
그해 첫날 햇살은 유난히 화창했네
어쩌면 반전의 기운,
불길한 징조였을까
시일야 방성대곡 주저앉은 그 울음
역사의 수레바퀴 돌고 도는 그 자리에
체면도 염치도 없이 도용하는 짓이라니
혀 깨물 용기도 없이 세 치 혀를 나불거리며
국민을 등지고 간, 애국 아닌 매국의 길
수난의 시간 속에서
촛불은 다시 타네

♧ 목숨
마을이 불타던 날 산으로 뛰었습니다 두 살짜리 아이 업고 담요 한 장 덮어 씌워, 스물둘 신혼의 꿈도 그 때 모두 불탔습니다
쌀 한 되 간장 한 병 산사람에게 준 죄로 콩밭 소나무밭 벌레처럼 기어서 산으로 숨었습니다 무자년 가을입니다
후다닥 피해 달아난 남편소식 끊어지고 몇 날을 헤매었을까 산에 눈, 내립니다 두 손에 내린 곤밥*을 와들와들 삼켰습니다
산에서 잡혔다고 산사람이 되었습니다 전기고문 비행기고문 팔 꺾여 허리 부러져, 가는 숨 늘어진 아이 품에 안고 울었습니다
배에 태워 어딜 가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무릎에 눕힌 아이 숨이 곧 멎을 것 같아 코에다 손을 대보면 아뜩한 숨소리
새끼가 무슨 죄냐 들여준 죽물, 서너 번 입에 넣었더니 똘, 깍, 똘, 깍 내리는 소리 이승의 마지막 난간에 간신히 매달려
배롱이 눈 떴습니다 살아있다는 신호처럼 그 아이 살아남아 지금, 일흔입니다 그 세상 살아서 넘은 질기디질긴 명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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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밥을 이르는 제주어

♧ 하직下直
-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서
내 손으로 너를 묶고
네 손으로 나를 묶고
건너갈 저 세상
벼랑 끝 이 세상
뒤돌아
부르는 이름
어머니
어
머
니
*김영란 시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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