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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의 시(2)

by 김창집1 2025. 10. 29.

 

 

첫 물질

 

엄마는 담배를 물고 불안으로 늙고 있었다

노래를 따라가 보니 물속이었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요일의 아침 햇살 같은 물빛이었다

섬에서 늙는다는 건 비밀이 될 수 없다

덜 먹고 덜 기대하고 덜 꿈꾸는 것이 비밀이었다

비밀을 없애기 위해 물에 드는 여인들의 노래는

바다의 상상이었다

여인들의 얼굴은 눈이 부시었다가 흐릿해졌다

명령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낭만도 아니었다

순전히 노래가 가는 방향이 물이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비밀을 나눌 곳이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했다

돌고래만 지나는 물길을 잊어도

노래를 잊지 못하는 건 바다의 상상 끝에 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마주한 여인의 표정이 나이고

나는 여럿이고 봄밤이 가라앉고 있었다

노래는 춤인 듯하고 춤은 물의 윤곽인 듯했다

거기서부터 알면 된다는 듯 손금이 늘어났다

서툰 만큼 울어도 되는 곳

열다섯을 지나는 그곳에 나는 있었다

 

 



제주이다

 

 

제주 사람들은 살다 힘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드라마에서 살다 힘들면 제주로 오라 했는데

 

먼저 가 버린 사람을 향해 살아간다는

여인들이 바다에서 돌아올 때

몸 뒤에 굽은 길을 메고 왔다

서로가 닿을 수 있는 뿌리처럼 노래처럼

 

생일을 기억하는 날은 앓았다

물이 고막을 찢고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런 날 여인들은 무자맥질을 한다

바다에 길들여지는 일이란

제 몸이 물의 뿌리라는 걸 아는 것

어둠 속에서도 바다를 쥐고 물어뜯으며

아슬아슬 뻗어 나가 온 섬을 감싸면

바다보다도 지독한 푸른 여자로 핀다고

떠나려면 제주를 버리지 말고

제주마저 업고 떠나야 했다

여인들은 메고 온 길을 부리고

수십 번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를 악물고 다시 물로 간다

살다 힘들면 별자리처럼 이어진 뿌리를 본다

네 힘으로 내 힘도 생긴다는 뿌리들 노래로

단단해진 울음이 제주이다

 

살다 힘들면 내 힘으로 네 힘도 생기는

뿌리가 되어 가는 중인 것이다

제주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상가

 

 

당구, 은행, 농협, 문구, 사진관, 에스테틱

갑자기 섬사람들 사이로 파고드는

찻집에서 올려다보는 상가 글자들

 

난공불락 요새처럼 견고한 상가의 적은 상가

에스테틱에 가본 적 없어서 에스테틱적이고

사랑을 멈추면 사랑의 적이 되고

 

며칠 전 쓴 시는 패잔병 걸음이었다

진눈깨비가 몸을 휘감아도

따뜻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찻집은 텅 비고 마라당 집은 붐볐다

후회와 실패의 알알한 전장을 혀는 매달린다

매달리는 것이 승리를 기다리는 맛인 줄 알고

 

상가의 적은 상가

공격을 받은 적 없는데

아물어야 할 마음을 적는다

 

저녁 별 뜨기 전 상가 네온사인이

거리를 채우면, 심사람들은

현란함이 무거워 등 굽고 걷는다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해발이 높을수록 아파트 분양가도 높다

천국 속살 같은 햇볕에 조경수는 자라고

 

바다로 뛰어드는 불굴의 투지를

투자로 바꾼 자는 영웅이 되어

바다를 바닥처럼 내려다본다

 

바다는 천국과 멀다

불굴의 투지가 투자가 되지 못하면

바다에 들러붙어 살아야 한다

치통이 있는 어금니 방향으로 볼을 누르고 자는 것처럼

 

누가 높고 빛나는 곳을 천국이라 고정시켰을까?

 

기도드리며 기다림을 견디던 곳에 들어선 아파트에

불이 켜진 밤에는 바다에 배들이 사라지고

집어등 불빛으로 밥 먹던 풍경은

우리만 아는 것이 되었다

 

바다는 바다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길 끝이 바다인 걸 알면서도

매일 어머니께 어디 가요?” 묻는다

묻고 나면 헉헉거렸다

 

 



증언

 

 

제주 가면 바람 없는 곳을 걷고 싶다는 지인에게

그런 곳은 없다 했다

나무가 없어도 바다가 없어도 땡볕이어도

새벽 한기처럼 바람은 분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눈물은 저기로 데리고 간 듯

 

바람을 본 사람은 없으나

제주에 오면 누구나 바람을 입에 물게 된다

 

입안에 처음 들어온 악의 맛에

어떤 어휘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노래를 끊은 사람

웃음을 끊은 사람

목숨을 끊은 사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누군가의 흉터 속에서

방금 걸었던 길 속에서

겹겹의 바람이 밀려 나온다

 

제주에 오면 바람이 불어오는 동굴로

다랑쉬굴의 연기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걷는사람,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