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들이 죽었다 살아나요
소비기한 따로 없어도 방부제 넣지 않아
짧은 생에 시들이 가끔 죽었다 살아나요
시인이 소비자 되는
상부상조 생태계
주문받은 시만 파는 효율성 높은 시인도
시세가 하락할 때 줍줍 해주면 빛이 나요
시들은 시들 일 없다는
심폐소생 계간평

♧ 산지 폐기
땡볕 우린 서리 맞고 하얗게 밤 지새며
금이야 옥이야 살갑게 안았다가
꿈에도 이제나저제나 수확만 기대했지
품앗이는 불법이라 나 홀로 시詩 씨 심고
거름 주고 농약 치며 눈물로 키웠는데
마감날 닥치고 나니 과잉생산 우려 소식
이럴 바엔 갈아엎어 못 썼다 해버릴까
인건비도 못 건지는 계간 겨울호 3장 6구
빈 밭에 바람 든 무 같은 무지렁이 내 새끼들
사유다 서정이다 은유다 리듬이다
이 주제 이 정도로 쓰는 시인 흔하다 하니
시조단 수급 조절 위해 산지 폐기 선언할까

♧ 김정호와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를 눈을 감고 부르던
그를 처음 봤을 때 조선의 그가 떠올랐지
이름을 몰랐던 길이며 고을 강산 찾아 돌던
그의 후예 내비게이션 내 향방을 좌우한다
두 다리가 GPS였던 도포 자락 그 사내
강토를 걷고 걸어서 땅의 악보 새긴 거지
조선 땅 대동여지도 9할 넘는 싱크로율
가장 한국적 그의 노래 어스름도 젖어 든다
누구도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내던 김정호들

♧ 취재가 시작되자
뭉개던 난동 사건 3일 만에 해결되며
가해자 입건되고 신고자 안도하네
마법이 작동합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수없이 넣은 골목길의 교통 문제 처리되며
민원인 안심하고 골칫거리 없어지네
반전이 생겼습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모 은행 은닉되던 대출사고 드러나며
피해자 눈물 나고 피의자 잡혀가네
기적이 일어납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 엄마다!
한적한 카페 주차장 제비 아파트 열두 채
어미 새 벌레 물고 돌아오는 날갯짓
엄마다!
일제히 소리치며
입 쫙 벌리는 새끼들
순번을 정했는지 기다릴 줄 아는 새들
자식들 잘 먹어서 흐뭇해진 엄마는
먼 길에 숨넘어갈 듯해도
입 벌리지 않는다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 (가히, 2025)에서
*사진 : 가을 꽃 - 위로부터 물매화, 진범, 금강초롱, 용담, 산국, 나도송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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