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대
파도가 부서지고
섬에 닿고 또 떠나도
등대는 귀를 열고
새소리만 듣는다
당신의
아픈 기억을
지켜주는 기다림

♧ 영등할망
얼마나 기다렸으면 입춘까지 못 기다려
초하루 귀덕 포구 버선발로 내려섰나
치마폭 감추어둔 봄 삐죽 고개 내밀었다
겨울이 할퀴고 간 상처를 보듬으며
하늘 땅 바다까지 두 손에 움켜쥐고
섬사람 마른 가슴에 봄의 씨앗 심었다
비우고 다시 채워 넉넉한 이 바다를
돌아서 다시 보며 소섬 포구 떠나는 날
북 쳐라 장구도 쳐라 이 섬 가득 여물도록

♧ 알고 싶으면
바다가 고향인 소금은
오늘도 궁금했어요
저리 깊고 푸른 바다는
얼마나 짠 걸까
옷 벗고
풍덩 빠져서
다 녹여야 알았어요

♧ 토끼섬
작지만 하얗고 검은 하도리 앞 바위섬
억겁의 시간이 밀려와 쌓이고 쌓인 모래 둔덕
홀러온 문주란 씨앗 다리 뻗고 누웠다
메마른 땅이어도 꽃은 피고 다시 지고
하얀 토끼 부부가 오순도순 살았다네
전설을 모래에 묻고 섬 이름만 남겼다
고향을 묻지말아 뼈 묻으면 제집이지
현무암 구멍마다 난향 가득 고여 있고
말없이 가슴을 열어 찢어지는 꽃술이여

♧ 시인은
바다는 그 어디에 파도를 숨겼을까
하늘은 가슴 어디
구름을 품었을까
시인은
구슬 같은 시어
언제 꺼내 꿰는 걸까.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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