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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5. 11. 1.

 

 

지진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윤대근

 

 

튀르키예 지진 발생 지역

생존자를 찾아 숨 가쁜 구호대

 

건물 잔해 더미 속에

젊은 여인 홀로 기도하는 모습으로

무릎 꿇고 양팔로

바닥 딛고 있는 것 아닌가?

 

목과 허리뼈는 부러져 이미 숨을 거둔 여인

구호대는 그 가슴 앞 작은 공간에서

두어 달 된 숨 쉬는 아기

기적 하나를 찾아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그 참혹한 전장에서 잃어 가는 것을

가이아* 어머니는 보여 주고 싶었을까?

내 품의 모든 아들딸들이여!

이렇게 너희를 사랑하고 있노라며-

 

---

* 희랍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무게 이산

 

 

길을 나서자 내달린다

아장아장 다리에 근육이 차올랐는지

발걸음은 봄빛보다 가벼워

두서없이 허공을 날다가

초과한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시장 끝으로 이어지는 길은 수타면처럼 길고 진하다

등에 업힌 작은 엉덩이를 수없이 들척이다가

문득

반백 년 동안 닫혔던 어머니의 문이 열렸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다리가 부러진 나는

쉴 수도 없는 2km의 논길을

엄마의 작은 등에 얹혀 책가방과 함께 다녔다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통학길의 무게, 고통, 인내를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상에서는 절대 제작할 수 없는

골리앗 크레인은 이제

뼈저린 눈물로도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다

 

 



공원 이영란

 

 

차 한잔하세요 비둘기는 어제가 아닌 것처럼, 천국 가셔야죠 뛰어가는 아이의 노란 가방 어디까지 갔을까

 

그네에 앉는다 멈춰 있던 내가 흔들리고 천국도 맛이 있다면 비밀이 천국이라면

 

유모차에서 잠이 든 강아지 깨어나지 않고 천국은 아무나 못 갑니다 커피 드세요

아직도 흔들리는 그네 믿어도 될까

 

천국은 구체적이지 않아 촘촘한 매뉴얼이 필요해

 

수용 인원 복지 제도

 

마감 날짜 자격 조건

 

비둘기는 돌아오지 않고

 

나는 집으로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위하여 - 임미리

 

 

긴 울음의 끝자락을 잘라 낸다.

, 여름의 소리들이 멈춘다.

이별은 준비 없는 햇살처럼 쏟아진다

무엇을 위하여 참아 낼 수 있었을까

벼 이삭의 꽃이 지고 열매가 영글어 간다

누구를 위하여 발굴의 몸짓을 익혔을까.

궁색한 변명을 누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뜨거운 여름과의 이별을 견디었을 뿐이라고

침묵 너머를 위하여 악수를 청한다

사라지는 기억들을 끌어안아도

이제는 싹둑 잘려 나가 돌이킬 수 없다.

끝없는 내리막길, 안부조차 물을 수 없다.

마중물처럼 차갑게 솟구치는 감정을 애써 잘라 낸다

똬리를 튼 뱀을 피하듯 나를 위하여

깃털처럼 가벼운 저울질을 멈춘다.

너울처럼 속절없는 나를 위하여

불안한 양가감정을 빗방울처럼 털어 내며

놓쳐 버린 것들을 후회 없이 내려놓는다

 

 



방 볼 수 있나요 김정범

 

 

녹슨 등껍질을 흔들며 벌레가 바퀴를 굴렸다

곰팡이가 그린 지구 안에서 파도가 튀어나와 벽에 달라붙는다

 

괜찮을까요?

어떻게 할까요?

새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우짖는다

꺼진 거실 등 아래서 부리를 쪼아 대다

새는 수건을 꺼내 들었다

닦아도 소용없어요

 

그렇지

순수는 멸종했어

되를 세척해도 끈적거림은 여전히 남겠지

아무리 점잔을 떨어도 내 검은 골수는 사라지지 않아

 

페인트칠을 해 봐

아니, 뺑끼 뺑끼칠을 해선 안 되는데

소파를 밀어 왼쪽 벽에 붙인다

이게 더 아름다워 보여요

 

방 볼 수 있어요

약속을 한 후

나는 머리에 손을 넣어

흰 거품 부글대는 비누를 문질러 댔다

 

철문이 열리지 않아

결국 방은 볼 수 없었다

수리공이 왔다 간 후에도 방은 열리지 않았다

 

녹물이 뚝뚝 떨어지며 방 안을 울린다

누구세요

지금 방 볼 수 있나요

 

 

                          *월간 우리202510월호(통권 제448)에서

   *사진 가을 열매들 - 차례로 개머루, 누리장나무, 남오미자, 노린재나무, 구기자, 까마귀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