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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의 시(8)

by 김창집1 2025. 11. 12.

 

 

안방 노마드의 쓸데 없는 생각

 

1

손바닥 안에서도 가는 길이 다 달라

선택인가 지명인가 신분 상승 꿈꾸네

새로 산 텔레비전이 속마음까지 들추고

 

맘먹고 갈 길이라면 줏대는 있어야지

잘난 척 막 나가다 짓무른 붉은 딸기

이중 막 비닐하우스 민심은 알까 몰라

 

계산된 사랑에는 계약만큼 주고받지

헛공약 말풍선에 바람 드는 줄 모르네

우리 집 무선 청소기 덩달아 합심이다

 

2

원院 밖에서 닳은 깻잎 공존을 외친다

맞짱 뜰까 인정할까 시류를 탓해야 하나

다부진 손바닥으로 힘줄 불끈 세운다

 

 



♧ 진통제의 효능

 

 

매복된 삶의 염증, 어깨가 무너졌다

한밤중 평화유지에 초강수를 두고서

마른 땅 갈라진 틈에 촘촘한 빗발이듯

 

작열하는 통증에는 이유 하나 더 있다

낌새 없이 자라나는 그리움의 시간만큼

별똥별 쏟아져 내린다 망각의 전략이듯

 

삶의 마디마디 지지대는 못 놓더라도

달래고 어르면서 덧없는 힘줄 세우며

멀고 먼 의식을 붙잡는 가물가물 사랑이듯

 

 



♧ 치기 열전

 

 

하릴없는 바람처럼 하루쯤은 쉬었다 갈까

어젯밤 천등번개 날벼락 지기로 잠 설쳤네

공연히 아침노을이 비몽사몽 후려치네

 

하루치기 여행 생각 벼락치기 꿈틀했네

당일치기 시험공부 그 버릇 아직 남아

육십에 제대로 한번 치기 부려 비행기 탔네

 

아파트 버티기나 뻗치기나 저울 재다가

갈라지기로 이익 봤다는 친구 하나 번개 쳤네

달걀로 바위치기 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는

 

백일몽 능소화가 립스틱 지우는 저녁

서운암 장독대 앉아 치기심에 하루가 가고

얼치기 시 한 줄 핑계로 꽃만 실컷 보았네

 

 



♧ 미풍간이식당

 

 

선지피 닮은 낙엽

발등에 엉겨 붙네

뒷마당 연탄불 위 피거품 문 양은솥

추억은

적자 빛으로

몽글몽글 퍼 올려

 

여고생의 자취방 앞, 감성 따윈 아랑곳없어

술에 취한 손님에게 손목 한번 잡혔다고

처마 밑

무청 이파리

꾸역꾸역 풀 죽었지

 

여전히 시장기 감도는 한짓골 돌아들면

열일곱 심장이 뛰듯 간판 불은 여전한데,

뽀얗게

뭉클한 시간

목젖이 뜨겁다

 

 



♧ 도토리묵을 쑤다

 

 

갓 시집은 새댁이 하안 낯빛이었다가

 

어머니 밭이랑 닮은 골 깊은 주름이었다가

 

떫어도 한생을 견딘 할머니 마음이다

 

한눈팔지 말라던 그 말씀 잠시 잊어

 

때론 곁눈질에 씻지 못할 앙금도 남지

 

뭉근히 생生의 언저리 행방을 쫓고 있다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녘』 (목언예원,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