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방 노마드의 쓸데 없는 생각
1
손바닥 안에서도 가는 길이 다 달라
선택인가 지명인가 신분 상승 꿈꾸네
새로 산 텔레비전이 속마음까지 들추고
맘먹고 갈 길이라면 줏대는 있어야지
잘난 척 막 나가다 짓무른 붉은 딸기
이중 막 비닐하우스 민심은 알까 몰라
계산된 사랑에는 계약만큼 주고받지
헛공약 말풍선에 바람 드는 줄 모르네
우리 집 무선 청소기 덩달아 합심이다
2
원院 밖에서 닳은 깻잎 공존을 외친다
맞짱 뜰까 인정할까 시류를 탓해야 하나
다부진 손바닥으로 힘줄 불끈 세운다

♧ 진통제의 효능
매복된 삶의 염증, 어깨가 무너졌다
한밤중 평화유지에 초강수를 두고서
마른 땅 갈라진 틈에 촘촘한 빗발이듯
작열하는 통증에는 이유 하나 더 있다
낌새 없이 자라나는 그리움의 시간만큼
별똥별 쏟아져 내린다 망각의 전략이듯
삶의 마디마디 지지대는 못 놓더라도
달래고 어르면서 덧없는 힘줄 세우며
멀고 먼 의식을 붙잡는 가물가물 사랑이듯

♧ 치기 열전
하릴없는 바람처럼 하루쯤은 쉬었다 갈까
어젯밤 천등번개 날벼락 지기로 잠 설쳤네
공연히 아침노을이 비몽사몽 후려치네
하루치기 여행 생각 벼락치기 꿈틀했네
당일치기 시험공부 그 버릇 아직 남아
육십에 제대로 한번 치기 부려 비행기 탔네
아파트 버티기나 뻗치기나 저울 재다가
갈라지기로 이익 봤다는 친구 하나 번개 쳤네
달걀로 바위치기 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는
백일몽 능소화가 립스틱 지우는 저녁
서운암 장독대 앉아 치기심에 하루가 가고
얼치기 시 한 줄 핑계로 꽃만 실컷 보았네

♧ 미풍간이식당
선지피 닮은 낙엽
발등에 엉겨 붙네
뒷마당 연탄불 위 피거품 문 양은솥
추억은
적자 빛으로
몽글몽글 퍼 올려
여고생의 자취방 앞, 감성 따윈 아랑곳없어
술에 취한 손님에게 손목 한번 잡혔다고
처마 밑
무청 이파리
꾸역꾸역 풀 죽었지
여전히 시장기 감도는 한짓골 돌아들면
열일곱 심장이 뛰듯 간판 불은 여전한데,
뽀얗게
뭉클한 시간
목젖이 뜨겁다

♧ 도토리묵을 쑤다
갓 시집은 새댁이 하안 낯빛이었다가
어머니 밭이랑 닮은 골 깊은 주름이었다가
떫어도 한생을 견딘 할머니 마음이다
한눈팔지 말라던 그 말씀 잠시 잊어
때론 곁눈질에 씻지 못할 앙금도 남지
뭉근히 생生의 언저리 행방을 쫓고 있다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녘』 (목언예원,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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