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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의 시(5)

by 김창집1 2023. 11. 29.

 

 

별은 빛나건만

 

 

서울 갔다 온 날

집에 안 들리고

서귀포예술의전당 음악회에 가려

제주시청 앞 281번 버스 타니

작고 여위고 해맑은

서른 좀 넘었음직한

운전기사

다시 본다

 

한 시간 걸려 한라산 넘어

남극 수성壽星 보인다는

남성마을 내릴 때

뒤돌아

한 번 더 본다

 

젊은 기사여,

마흔 쉰 예순 되어도

그 눈빛 그대로이길!

 

 

 

 

235년 전

 

 

눈 감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듣는다

 

전날 완성해

한 번도 연습 못한 곡

피아노 치며

지휘하는 그

 

기립박수

 

눈 뜨니

 

창밖

비자나무

새들

 

살아있다!

 

 

 

 

배경

 

 

  해남 전국 시낭송 대회 때 심사위원 중 좀 젊은 시인이 오세영 원로시인으로 바뀌어졌는데, 김구슬 시인 대신 위원장 맡는 걸 고사하여 두 번째 자리에 내내 앉아 계신 걸 보았다.

 

  근래 선생이 발표한 시를 보니 어떤 자리든 늘 중심이나 앞에 있었지 뒤가 된 적이 없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다.

 

 

 

 

곡우穀雨 즈음에

 

 

오동나무 잎 솔솔 날고

종달새 파드득 피어나고

무지개 댕댕 울리는

청명淸明도 지나

 

세 살 아기 배꽃 빛 손바닥

살 올라오듯

뽀글뽀글 솟아나는

고로쇠나무같이

 

치잣빛 스커트

긴 다리

날날날

계단 오르는 단조음 여자

눈 속같이

 

아직 날지 못하는

어린 동박새

매화나무, 살 비벼 등어리 되어 주는

어미 새같이

 

어릴 적 꿈꾸던,

바다 위아래

휘저어 다니는,

침몰은 차마 꿈도 없던

그런 배,

비추는 먼 불빛같이

 

진달래 자르르 웃고

나비 하얗게 뜨고

황사 지레 가 버린

곡우 즈음에

 

 

 

 

허구헌 날

 

 

한라산 남쪽

위미리에 집 마련

용인서 자주

십 년 뜰 가꾸는

수필가 손광성 선생

육이오 때 누님과 내려와

미수米壽 가까운

 

잔디밭 잡초 매는 거

도와주려

산 북쪽서

아침에 간 아내에게

나 선생은 뭐하고 있어?”

 

한라산만

바라보고 있어요

 

나부상裸婦像

쓰윽 웃었다

 

 

 

            * 나기철 시집 담록빛 물방울(서정시학,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