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무들은 다만
나무들은 다만
제 곁을 내어서
서로 어깨를 겯고 함께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무들은
살랑살랑 흔들면서
틈새를 열어 어린 것들에게
햇빛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너와 나로 사는 것은
서로의 곁을 지기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한없이 바라보는 것
어느 바람 몹시 불던 날
휘어지며, 휘어지며
바람을 막고 버티어 서서
여린 풀잎은 푸르게 자라고
새들은 즐거이 노래하였다
나무의 사랑은
제자리에 굳게 서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것
함께 하늘을 열어가는 것이라 한다.

♧ 너의 모습은
어느 날 너는
연필로 그린 섬세한 눈빛
가을 산 청량한 메아리
일기장에 간직한 은행잎
처음인 듯 수줍은 미소
하나님의 모습이라 했는데
어느 날 너는
유리 조각의 싸늘한 눈빛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눈을 감은 초상화
'김치' 하는 어설픈 미소
하나님의 모습이라 했는데

♧ 이별에 대하여
이별은 아가의
첫울음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듯
술 한 잔에 껄껄대던 친구도 가고
어머니 아버지, 애달픈 나의 첫사랑이며,
사철 종종대던 아내도 훌쩍 떠나고
바람 부는 바닷가에 혼자 서 있다.
팔랑팔랑 나부끼는
삶의 바다에서 이별은
풀잎 끝에 떨리고
민들레 날아간 산 너머로
그리움은 뻐꾸기 소리를 끌고 간다
대지는 여전히 푸르고
아가의 첫울음으로 떠나온
나의 사랑과 나의 고향
나의 그리움을 다하여
이별을 걸어가야 한다.

♧ 사랑 2
바닷가에서 보았네
일렁이며, 일렁이며 달려와
치솟는 하얀 불기둥
오오, 황홀한 함몰
하늘로 소리치는 환희
그리고 또 보았네
저 끝에서 저 끝까지
품어 안은 바다
부서져서 빛나는 윤슬
뜨거운 슬픔
사랑이여

♧ 춘정
봄 햇살
나른한 들판에
졸고 있는 조랑말
시커먼 팔뚝을 꺼덕거린다
끄응, 고내오름이
무거운 몸을 고쳐 앉고
삼백 년 늙은 소나무
채신머리없이
누런 송화를 방뇨하고
산벚나무 흐드러져
분홍 꽃잎 분분할 때
빙글빙글
하늘이 노랗게
어질머리한다.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 (푸른생각, 2025)에서
*사진 :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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