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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의 시(9)

by 김창집1 2025. 11. 26.

 

 

♧ 수건에 대한 회상의 전말

 

시접 풀린 낡은 수건 희미한 흔적 하나

지점판촉 기념 문구 프린팅이 눈에 밟혀

사 등분 개킨 수건 끝, 남은 꿈을 읽는다

 

치열했던 화이트칼라 밤샌 날이 몇 날인가

땀방울 눈물방을 문전성시 이룬 날도,

통장의 잔액은 아는지 뻔뻔히 객기 부리던

 

궤도엔 진입했을까 유성처럼 사라진 지점

치자꽃 수두룩 폈다가 구겨진 폐지로 남아

장맛비 간절함 속에 치자꽃 또 피는데

 

연륜이 깊을수록 예고된 종말이지만

푹푹 삶아 환한 순간은 살아 있는 걸작이야

죄 없는 기억을 들추며 여태 닦고 있는 너!

 

 

 

♧ 마라도 선인장

 

 

머문 듯

흐르는 듯

절반은 뚝심인 듯

 

길들여진 저항정신

가시 세워 지킨다

 

때때로

손바닥 안에

노란 등을 켜들며

 

 



♧ 무오법정사 옛터에서

 

 

나뭇잎 흔들려요

맞바람 항변인가요

 

후드득 소낙비 꽂혀요

눈물 감춘 절규인가요

 

새싹이 뾰족 돋아요

우주를 향한 일침인가요

 

 

 



♧ 할머니의 베개

 

 

메밀꽃 지던 밤에 하얀 손 흔들며 떠난,

 

홀로 남은 빈자리에 쭉정이 꼭꼭 눌러

 

탱탱한 팔베개 마냥 얼굴 한쪽 파묻네

 

 



♧ 뚜껑별꽃

 

 

바위틈 입술 파란

애기해녀 모였네

 

갯바람에 귀를 열어

저들끼리 소곤소곤

 

새연교 다리를 건너

불턱 깊이 앉아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 (목언예원,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