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건에 대한 회상의 전말
시접 풀린 낡은 수건 희미한 흔적 하나
지점판촉 기념 문구 프린팅이 눈에 밟혀
사 등분 개킨 수건 끝, 남은 꿈을 읽는다
치열했던 화이트칼라 밤샌 날이 몇 날인가
땀방울 눈물방을 문전성시 이룬 날도,
통장의 잔액은 아는지 뻔뻔히 객기 부리던
궤도엔 진입했을까 유성처럼 사라진 지점
치자꽃 수두룩 폈다가 구겨진 폐지로 남아
장맛비 간절함 속에 치자꽃 또 피는데
연륜이 깊을수록 예고된 종말이지만
푹푹 삶아 환한 순간은 살아 있는 걸작이야
죄 없는 기억을 들추며 여태 닦고 있는 너!

♧ 마라도 선인장
머문 듯
흐르는 듯
절반은 뚝심인 듯
길들여진 저항정신
가시 세워 지킨다
때때로
손바닥 안에
노란 등을 켜들며

♧ 무오법정사 옛터에서
나뭇잎 흔들려요
맞바람 항변인가요
후드득 소낙비 꽂혀요
눈물 감춘 절규인가요
새싹이 뾰족 돋아요
우주를 향한 일침인가요

♧ 할머니의 베개
메밀꽃 지던 밤에 하얀 손 흔들며 떠난,
홀로 남은 빈자리에 쭉정이 꼭꼭 눌러
탱탱한 팔베개 마냥 얼굴 한쪽 파묻네

♧ 뚜껑별꽃
바위틈 입술 파란
애기해녀 모였네
갯바람에 귀를 열어
저들끼리 소곤소곤
새연교 다리를 건너
불턱 깊이 앉아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 (목언예원,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의 시(1) (1) | 2025.11.28 |
|---|---|
| 오광석 시집 '귓속의 이야기'의 시(완) (1) | 2025.11.27 |
|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13) (0) | 2025.11.25 |
|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2) (1) | 2025.11.24 |
|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4) (0) |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