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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의 시(1)

by 김창집1 2025. 11. 28.

 

 

♧ 시집 머리에 얹다

 

 

혼자 온 길

홀로 가면서

 

행간을 살리고

여백을 넓히고 싶어

 

늙마의 마당 한편

한등寒燈 하나 내걸고

 

북한산 골짜기 우이동의 세월이 떨어뜨린

삶의 부스러기를 하나씩 주위 모았다.

 

 

                               을사년 가을, 세란현洗蘭軒에서

                                                          홍해리 적음.

 

 

 

♧ 꿈속에서 쓴 시

 

언뜻 생각이 떠올라

끼적여 놓았다

잠시 후

또한 줄을 썼다

또한 생각이 나

또 썼다

그릴 듯한 시가 되었다.

 

잠 깨어 머리맡 백지를 보니

쓴 위에 또 쓰고

그 위에 또 쓴

누구도 읽을 수 없는

한 줄뿐

까맣게 반짝이는

시 한 편.

 

 



♧ 곡선의 시

 

 

직선의 시는 싫다

맛도 없고 졸음이 온다.

 

곡선이 있어 번짐이 있는 시

조용히 스미고 가만히 번져드는

떨리는 거문고 현처럼

느리게 가슴을 울리는 시

그런 시가 좋다.

 

그러니 시가 익을 때까지

진드근히 기다리거라.

아비다리하지 말고

진동한동하지 말고

초벌 매고 이듬매기하면서 농사 짓듯이,

 

쇠를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하고

또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하고

또 그렇게 해서

날을 세우듯이

이드거니 다듬으면서 기다리거라.

 

 



♧ 추억

 

 

바다는 잔잔했다

막 떠오른 해가 금빛 햇살을 내리꽂고 있었다

실로폰 소리가 통통 튀어오르고 있었다

보랏빛이었다

어디선가 젖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8월이 느릿느릿 바닷가를 돌아가고 있었다

저 거대한 짐승이라니!

 

 



♧ 2020 . 봄

 

 

꽃이 피어도

향기가 없고

 

새가 울어도

울림이 없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없다

 

비참한 봄이다

환멸의 봄이다.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도서출판놀북, 2025)에서

                                           *사진 : 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