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自序 - 바다에 밥 한술 던지는 마음으로
오늘도 바다는 밀려갔다 밀려오고
찰랑찰랑 소리를 냅니다
보는 사람 없어도 왔다 가고
듣는 사람 없어도 찰랑거립니다
나의 시 한 편이 망망대해에 던져진들
바다의 수위를 높이진 못하겠지만
어느 물고기의 양식이 되거나
흔들리는 수초의 거름이 되거나
조금이라도 이 바다에 뭔가를 보태고 싶은 마음으로
혹 밑바닥에 눌어붙어 오염물이 되지 않기만 바랄 뿐

♧ 거울상 이성질체
같지만 다른 것이고 다르지만 같은 거라는
네 말은
화학시간의 거울상 이성질체처럼
좀처럼 이해되지 않지만
같은 듯 다른 사람과
다른 듯 닮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너와 내가 서 있다는 것쯤은 안다
너는 손거울 속에서
반대편에 있는 나를 봤다고 했다
모두가 오른쪽으로 달려갈 때
왼쪽으로 걸어가는 닳아빠진 구두 뒤축도
거울로 비춰보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네가 날마다 들여다보는 거울 안에서
나는 무거운 새벽을 끌며 오른쪽으로 걸었겠지
왼손으로 악수하고
왼쪽으로 가르마를 타는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왼뺨에 패인 우물 안, 살짝 고인 어둠을
왼쪽 눈동자로 흘겨보는 사람들과
등으로 마주하면서
어느 쪽이 거울 밖 세상이고
어느 쪽이 거울 안 세상인지
좀처럼 알 수 없는 네 말에서
어우러진다는 것을 감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왼손으로 고백한다

♧ 거울 속 그 사람
그를 만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의 표정을 보고
그의 매무새를 보고
그를 통하여 나의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를 만납니다
그에게 오늘 하루를 꺼내 놓습니다
잘 보냈다고
힘든 일 있었다고
그는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들여다보듯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항상 나와 같은 모습으로 맞아줍니다
오른손을 내밀면 왼손을 내밀어 맞댑니다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울면 같이 울어줍니다
원하면 언제든 맞아주고
등 돌려 나가도 미련 없이 보내줍니다
거울 속에 사는
그는 상담의 달인입니다

♧ 닮은 듯 다른 우리
나는 노동을 한다
그는 운동을 한다
임시 공휴일
대체 휴일
그는 유급 휴일 공 치러 가는 날
나는 무급 휴일 공치는 날
그는 운동을 하고
나는 노동을 한다
그의 땀냄새는 향기롭고
나의 땀냄새는 끈적끈적하다
그의 몸은 운동으로 다져져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 볼륨업이고
나의 꿈은 노동에 짓눌려 나온 데만 나와
배만 볼록 배불뚝이다
그는 비싼 음식집 찾아 맛을 즐기고
나는 저렴한 집을 찾아 배를 채운다
그가 칵테일을 곁들이며 품위 있게 먹을 때
나는 막걸리에 김치 찢으며 배불리 먹는다
그가 다음 생을 생각하며 기도 드릴 때
나는 지금 생에서 벗어나기를 기도 드린다
나는 노동을 하고
그는 운동을 한다
나는 사회운동을 하고
그는 선거운동을 한다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그는 달리는 역사에 올라타 그냥 흔들린다
오늘도
나는 노동을 하고 땀을 흘리고
그는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다

♧ 달팽이
달팽이를 봤어요
어제는 푸른 똥
오늘은 빨간 똥
형형색색 똥을 싸는 달팽이를 봤어요
해외 순방 나갈 때도 변기를 갖고 간다는
나라님의 기사를 봤어요
당신들이 먹는 것은 뉴스로 본 적 있으나
꼭꼭 숨어서 싸는 것은 보질 못했으니
너무 궁금해요
냄새난다고 당신이 가지 않는 재래시장에서
배를 채우는 내가 싸는 똥
고급진 식당에서 맛깔스러운 요리 먹어 싼 똥
막걸리 한 사발 곁들인 나의 똥과
고급 와인 곁들여진 똥이 어떻게 다른지
달팽이였다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의 한 달치 피똥 싼 월급을 계산하는
당신의 똥은
무슨 색일까요?
*양동림 시집 『거울상 이성질체』 (한그루 시선,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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