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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1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5. 11. 30.

 

 

♧ 익명의 도시 – 목경희

 

네온 빛 흐르는 거리

수많은 발걸음이 스쳐 간다

말없이 미소 짓는 얼굴들 속

미소는 번지고 흩어진다

 

스쳐 간 손끝의 체온도

부딪힌 시선도

파문처럼 흩어진 뒤

남는 건 깊어진 적막뿐

 

수천 개 목소리 가득한 광장에서

가장 선명한 이름으로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이 공허함은 어쩌면

너무 많은 얼굴 속에서

끝내 한 사람조차 찾지 못한

절망일지도

 

소음은 크고 빛은 번화한데

군중 속으로 몸을 밀어 넣을수록

더 멀어져 가는 자신의 그림자

 

웃음으로 가린 이 쓸쓸함은

결국 나에게 가장 솔직한 얼굴

그리고 다시 사람들 속에 묻힌다

 

길을 잃을 때마다 더 분명히 깨닫는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결국 사라져 버린 나 자신이라는 것을

 

오래된 그리움 한 송이

내 얼굴을 덮고

잊힌 이름을 조용히 부른다

나는 적막 속에서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 다시 걷는다

 

 

 

 

그녀의 춤에서 향기가 난다 박동남

 

 

강물처럼 춤추던 그녀

유리창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가슴을 적시던 기억들을 몸으로 말한다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자유로운 빛을 향해 날아오른다

싱그런 바람 같은 매무새로

거칠고 험한 삶을 사랑으로 보듬는다

안심의 해변이 다가와 파도 소리로 말한다

설레는 가슴이 먼저 반긴다

극과 극을 오갔던 그녀

지구별을 여행하는 애절하고 절실한 그녀의 몸짓이 흥미롭다

순간순간들을 차오르는 달을 향해 염원한다

갈채를 먹고 사는 그녀에게서 자스민 향기가 난다

 

 

 

 

추수 감사 박부민

 

 

억새풀 출렁이는 단풍골

종일 햇빛 따스하다

삶이란 모든 걸 털어 낸 후

비로소 허름한 집 하나 세우는

마른 깻단 같은 것

계곡에 감사 찬송 울릴 때

부부의 어깨 위엔

푸드덕, 산그늘이 흩어진다

저 힘줄 굵은 큰 산

은총의 구름 내리는 마을

길은 늘 비탈을 이기며 오르고

맑은 숨 내뿜어 기도하는 나무들

야윈 몸 잇대어 흰 눈발을 기다리니

앞마당 울먹이는 까치밥도

불빛 초롱초롱하여라

 

 



쌍문동의 아침 풍경 배한조

 

 

새벽부터

부지런한 고양이가 뜯어 놓은

음식물 봉지

 

까마귀가 와서

가시 앙상한 고등어 꼬리

물고 간다.

 

까치가 와서

쉰 감자 조각 하나 물고 간다.

 

참새가 몰려와

시끌시끌 잔치하고 나면

 

언제부턴가 족제비가 나타나

기웃거리다 그냥 간다.

 

해가 이웃 빌라 옆구리로 얼굴 내밀면

수거차가 찢어진 음식물 봉투를

통째로 꿀꺽 삼키고 간다.

 

모두 가 버리고 골목이 허전해지면

성가시던 비둘기가

겨울옷 단단히 걸치고

거리를 배회하던 그들처럼

눈에 밟힌다.

 

어찌 살던

다 사는 쌍문동

 

 



도형으로 된 사랑 이송희

 

 

1. 삼각형

 

, , 그리고 우리 사이의 빈틈을

 

모서리마다 칼날 같은 의심이 숨는다

 

서로가 다가설수록 그늘이 깊어졌다

 

 

2. 원형

 

창에 비친 얼굴이

어둠 속에 흔들린다

 

유리 속에 머문 표정은

순간 빛을 잃은 채

 

바람에 흩날리다가

다시 나로 돌아온다

 

 

3. 사각형

 

 

대화는 네 귀퉁이마다 흩어져 고인다

 

토스트를 베어 문 채 휴대폰에 잠긴 너

 

우리는 식탁 모서리에 앉아

마주 보아도 닿지 않는다

 

 

                        *월간 우리20254월호(통권 제449)에서

                                                *사진 : 반딧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