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름비
할머니 잇몸으로 수박 반 통 잡수시고
밤새 수국 같은 요강에
오줌을 계속 누셨네
오늘 빗소리처럼
나비잠 자겠네

♧ 다섯 살 섬
흔들말에 앉아 폴폴 날리는
흙먼지 잡아먹던
어린 손
좌악 펴면 엄마가 온다
눈시울 붉어진 바다
계절도 잊고
시간도 잊고
그저 등에 업힌 채
엄마 배를 물결인 듯 만지며
좋아 좋아
웃을 때마다 켜지는 집어등
참았던 졸음이 가고 가고

♧ 슬픔은 부력을 잃지 않는다
스크루에 머리가 잘려 나가도
돌고래는 안다
지느러미에 업힌 게 제 새끼라는 걸
무리에서 뒤처져 혼자 세상 먼 거리를 앓아도
돌고래는 안다
업힌 새끼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걸
물결보다 높이 새끼를 올리다
떨어지면 아래로 내려가
다시 받쳐 올리고
떨어지고 올리고 떨어지고
바다도 푸른 눈물
동동 구르고 있다는 걸
돌고래 새끼 숨 쉬며 놀고 울던 자리
찾아다니다 죽을 거라는 걸
세상 모든 어미들은 안다

♧ 돗* 추렴하는 날
얼마만큼 빨리 뛰었더라
이를테면
보리 널어 둔 날에 소나기구름보다 빠르게 하지만 신나게
돼지 내장 다 꺼내듯 모든 비밀 털어놓고 춤추면서
골목들 다 빠져나와도 달콤하게 뛰는 심장
삼 년에 한번 딱 하루 동네에서 가장 부자 되는 날
친구들 먼저 손잡으며 졸졸 따라와 귓불이 간지러워 붉어질 때까지
전봇대에 목맨 돼지 아득바득대는 몸 따라
눈 가렸다 입 가렸다 못 보고 말 못 하던 병인년의 밤
생간 한 점 먹으면 보름밤 동안 무서운 게 없더라
도통**에서 똥 먹고 자란 돼지 살점 추잡한 욕보다 아름답더라
배를 가르기 전 유두가 딱딱해지도록
놀라움과 신비로움 뒤집힌 흰 눈자위에 다 꺼내 놓고 내지르는 탄성
“우리 집 돗 잡는다 우리 집 돗 잡는다”
있는 힘 다해 배고픔 참아 내듯 있는 힘 다해 배부르게 먹는 날
어둠도 당당히 어두운 날
삶은 돼지머리 껴안다 매 맞고도 몰래 돼지 혀 한 입 베어 물고
문지르면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는 배에 달을 눕히자
반짝이다 팡팡 터질 것 같은 채반 위 가득한 고기들
목구멍에 가장 가까이 닿을 때까지
어린 나와 함께 뛰어 보련
---
* ‘돼지’의 제주어.
** 돼지를 키우는 화장실.

♧ 느영나영*
가훈을 적어 오라는 숙제에
'한 번에 다 먹지 말라'를 적고 갔다
제삿밥으로 배를 채우러 오는 친척들
올망졸망 모여 밥 먹을 때
인사처럼 당부하는 말
'한 번에 다 먹지 말라' 그래야 더 배부르고 큰다
감자밭에 날아온 꿩 두 마리
식구가 한 번에 다 먹어선 안 될 일이지
꿩 두 마리로 겨울나도록 먹어야
못 먹어 못 죽어 서럽게 운 날을 잊어버리지
솥단지에 감주 넣고 꿩 넣고
온갖 걱정, 온갖 즐거움도 꿩엿 고는 시간보다 깊지 않는데
어떤 부끄러움도 꿩엿 고는 시간보다 길지 않은데
왜 한밤중에 그리 울었던 날이 많았는지
한 번에 다 생각하지 말고 꿩엿 고는 시간만큼 생각해야 마음이 더 크는 거라고
물질도 한 번에 다 잡을 생각하지 않아야
바다가 넓다는 걸 먼저 안다고
밤새 꿩엿 고는 엄마 옆에서 숙제했다 시집을 갔다
'한 번에 다 먹지 말라는 가훈이 아니라서
그날 숙제를 못 하고 온 아이들끼리
입김 가득 나오는 복도에서
'한 번에 다 먹지 말아‘야 배부른 것들과
섬에선 '한 번에 다 듣지 못하는' 바람 소리가
우리를 키울 거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
*제주 민요. '너하고 나하고’의 제주어.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 (걷는사람,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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