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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의 시(5)

by 김창집1 2025. 12. 1.

 

 

여름비

 

 

할머니 잇몸으로 수박 반 통 잡수시고

밤새 수국 같은 요강에

오줌을 계속 누셨네

오늘 빗소리처럼

 

나비잠 자겠네

 

 

 

다섯 살 섬

 

 

흔들말에 앉아 폴폴 날리는

흙먼지 잡아먹던

어린 손

좌악 펴면 엄마가 온다

 

눈시울 붉어진 바다

계절도 잊고

시간도 잊고

그저 등에 업힌 채

 

엄마 배를 물결인 듯 만지며

좋아 좋아

웃을 때마다 켜지는 집어등

참았던 졸음이 가고 가고

 

 



슬픔은 부력을 잃지 않는다

 

 

스크루에 머리가 잘려 나가도

돌고래는 안다

지느러미에 업힌 게 제 새끼라는 걸

 

무리에서 뒤처져 혼자 세상 먼 거리를 앓아도

돌고래는 안다

업힌 새끼가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걸

 

물결보다 높이 새끼를 올리다

떨어지면 아래로 내려가

다시 받쳐 올리고

떨어지고 올리고 떨어지고

 

바다도 푸른 눈물

동동 구르고 있다는 걸

돌고래 새끼 숨 쉬며 놀고 울던 자리

찾아다니다 죽을 거라는 걸

세상 모든 어미들은 안다

 

 



* 추렴하는 날

 

 

얼마만큼 빨리 뛰었더라

이를테면

보리 널어 둔 날에 소나기구름보다 빠르게 하지만 신나게

돼지 내장 다 꺼내듯 모든 비밀 털어놓고 춤추면서

골목들 다 빠져나와도 달콤하게 뛰는 심장

 

삼 년에 한번 딱 하루 동네에서 가장 부자 되는 날

친구들 먼저 손잡으며 졸졸 따라와 귓불이 간지러워 붉어질 때까지

 

전봇대에 목맨 돼지 아득바득대는 몸 따라

눈 가렸다 입 가렸다 못 보고 말 못 하던 병인년의 밤

생간 한 점 먹으면 보름밤 동안 무서운 게 없더라

도통**에서 똥 먹고 자란 돼지 살점 추잡한 욕보다 아름답더라

 

배를 가르기 전 유두가 딱딱해지도록

놀라움과 신비로움 뒤집힌 흰 눈자위에 다 꺼내 놓고 내지르는 탄성

 

우리 집 돗 잡는다 우리 집 돗 잡는다

있는 힘 다해 배고픔 참아 내듯 있는 힘 다해 배부르게 먹는 날

어둠도 당당히 어두운 날

삶은 돼지머리 껴안다 매 맞고도 몰래 돼지 혀 한 입 베어 물고

문지르면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는 배에 달을 눕히자

반짝이다 팡팡 터질 것 같은 채반 위 가득한 고기들

목구멍에 가장 가까이 닿을 때까지

 

어린 나와 함께 뛰어 보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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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의 제주어.

** 돼지를 키우는 화장실.

 

 



느영나영*

 

 

가훈을 적어 오라는 숙제에

'한 번에 다 먹지 말라'를 적고 갔다

 

제삿밥으로 배를 채우러 오는 친척들

올망졸망 모여 밥 먹을 때

인사처럼 당부하는 말

'한 번에 다 먹지 말라' 그래야 더 배부르고 큰다

 

감자밭에 날아온 꿩 두 마리

식구가 한 번에 다 먹어선 안 될 일이지

꿩 두 마리로 겨울나도록 먹어야

못 먹어 못 죽어 서럽게 운 날을 잊어버리지

 

솥단지에 감주 넣고 꿩 넣고

온갖 걱정, 온갖 즐거움도 꿩엿 고는 시간보다 깊지 않는데

어떤 부끄러움도 꿩엿 고는 시간보다 길지 않은데

왜 한밤중에 그리 울었던 날이 많았는지

 

한 번에 다 생각하지 말고 꿩엿 고는 시간만큼 생각해야 마음이 더 크는 거라고

물질도 한 번에 다 잡을 생각하지 않아야

바다가 넓다는 걸 먼저 안다고

밤새 꿩엿 고는 엄마 옆에서 숙제했다 시집을 갔다

 

'한 번에 다 먹지 말라는 가훈이 아니라서

그날 숙제를 못 하고 온 아이들끼리

입김 가득 나오는 복도에서

'한 번에 다 먹지 말아야 배부른 것들과

섬에선 '한 번에 다 듣지 못하는' 바람 소리가

우리를 키울 거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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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민요. '너하고 나하고의 제주어.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 보나(걷는사람,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