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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의 시(13)

by 김창집1 2025. 12. 4.

 

골목의 체질

 

 

바람도 체위 바꿔 황급히 잦아들고

풍선이 부풀었다 바람 빠져 움츠리듯

야생이 즐비한 정글,

골목에서 멈춘다

 

시위하던 접시꽃이 아, 그만 주저앉아

새벽이슬 입에 물고 길을 내고 있을 때

날이 선 낙서에 긁혀

담벼락이 움찔한다

 

오래된 집 앞 가로등엔 가짜 뉴스 날아들어

하루살이 날갯짓의 진위를 가리려다

골목이 놓친 토씨 하나

물고 가는 어미 새

 



화살표

 

 

뾰족한 지느러미 시선을 당기며 간다

겨눈 곳 흐릿해도 허공을 가리켜도

 

날 믿고 따라오시라

엉켜 있는 미로로

 

저토록 가느다란 게 사람 끄는 힘이 있어

천하의 누구라도 그를 따라갈 수밖에

 

내 앞을 봐주며 가는

그의 뒤는 무방비

 

어딘지 모를 끝과 몸을 트는 화살촉

자갈길에 튕기고 진흙당에 박혀도

 

나는 또

너 한 사람의

화살표가 되고 싶다

 

 



혓바늘에 관한 은유법

 

 

깃털 하나 떨궈져 물낯에 퍼진 파문

제 몸통 백분의 일 빠져나간 줄 모른 채

퍼드덕 연못을 질러 황조롱이 솟구친다

 

낙엽 위에 구르는 도토리 보늬거나

하찮은 사시랑이도 저마다 몫이 있듯

혓바늘 7일째 돋아 말끝이 함몰된다

 

좁쌀만 한 이게 뭐라고 이 화염이 뭐라고

입에서 부화하는 구어체가 통증 앓으니

아리네 내뱉는 일이 참회록 읽듯 아리네

 

 



벽 앞에서

 

 

벽시계가 멈췄다 삼십 여 년 목덜미 내준

눈길 갔던 만큼이야 살가운 정 없어도

구억 보 넘게 걸었던

잰걸음 토닥이는 밤

 

느꺼운 기억들이 박음질 된 시곗바늘

부검 없이 배터리 빼내 치러지는 장례식

시간은 시부저기 일어나

벽 뚫고 간다 저만치

 

살다가 뒷걸음질 치고 싶을 때 있지만

내려와 눕고 싶은 시간제 밥벌이지만

높은

벽 넘을 수 없을 땐

뚫고서 가라 하네

 

 



측량이 끝난 뒤

 

 

1.

삐뚤빼뚤 살아왔을 저 중년 체형 좀 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소식 궁금해서

인바디 측정한다고

제 몸을 내맡기네

 

2.

돌담을 경계로 삼아 반백 년 살아온 집이

신앙처럼 믿었던 네모반듯 사유私有

측량에 박탈되고 나니

형체가 볼품없다

 

은연중에 쌓은 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서로를 잘 모르면서 멋대로 갈라치다

저쪽은 싹둑 내주고

이쪽은 가져오고

 

3.

그 개울과 노송 사이 눈대중으로 피었던

패랭이꽃 한쪽 잎이 바람에 잘린 아픔이고자

이참에 제대로 살아보려

선 긋는다 나도 내게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가히,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