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골목의 체질
바람도 체위 바꿔 황급히 잦아들고
풍선이 부풀었다 바람 빠져 움츠리듯
야생이 즐비한 정글,
골목에서 멈춘다
시위하던 접시꽃이 아, 그만 주저앉아
새벽이슬 입에 물고 길을 내고 있을 때
날이 선 낙서에 긁혀
담벼락이 움찔한다
오래된 집 앞 가로등엔 가짜 뉴스 날아들어
하루살이 날갯짓의 진위를 가리려다
골목이 놓친 토씨 하나
물고 가는 어미 새

♧ 화살표
뾰족한 지느러미 시선을 당기며 간다
겨눈 곳 흐릿해도 허공을 가리켜도
“날 믿고 따라오시라
엉켜 있는 미로로”
저토록 가느다란 게 사람 끄는 힘이 있어
천하의 누구라도 그를 따라갈 수밖에
내 앞을 봐주며 가는
그의 뒤는 무방비
어딘지 모를 끝과 몸을 트는 화살촉
자갈길에 튕기고 진흙당에 박혀도
나는 또
너 한 사람의
화살표가 되고 싶다

♧ 혓바늘에 관한 은유법
깃털 하나 떨궈져 물낯에 퍼진 파문
제 몸통 백분의 일 빠져나간 줄 모른 채
퍼드덕 연못을 질러 황조롱이 솟구친다
낙엽 위에 구르는 도토리 보늬거나
하찮은 사시랑이도 저마다 몫이 있듯
혓바늘 7일째 돋아 말끝이 함몰된다
좁쌀만 한 이게 뭐라고 이 화염이 뭐라고
입에서 부화하는 구어체가 통증 앓으니
아리네 내뱉는 일이 참회록 읽듯 아리네

♧ 벽 앞에서
벽시계가 멈췄다 삼십 여 년 목덜미 내준
눈길 갔던 만큼이야 살가운 정 없어도
구억 보 넘게 걸었던
잰걸음 토닥이는 밤
느꺼운 기억들이 박음질 된 시곗바늘
부검 없이 배터리 빼내 치러지는 장례식
시간은 시부저기 일어나
벽 뚫고 간다 저만치
살다가 뒷걸음질 치고 싶을 때 있지만
내려와 눕고 싶은 시간제 밥벌이지만
높은
벽 넘을 수 없을 땐
뚫고서 가라 하네

♧ 측량이 끝난 뒤
1.
삐뚤빼뚤 살아왔을 저 중년 체형 좀 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소식 궁금해서
인바디 측정한다고
제 몸을 내맡기네
2.
돌담을 경계로 삼아 반백 년 살아온 집이
신앙처럼 믿었던 네모반듯 사유私有가
측량에 박탈되고 나니
형체가 볼품없다
은연중에 쌓은 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서로를 잘 모르면서 멋대로 갈라치다
저쪽은 싹둑 내주고
이쪽은 가져오고
3.
그 개울과 노송 사이 눈대중으로 피었던
패랭이꽃 한쪽 잎이 바람에 잘린 아픔이고자
이참에 제대로 살아보려
선 긋는다 나도 내게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 (가히,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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