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암사에서
책 한 권 반야심경 배낭이 참 무겁다
있다와 없다 비움과 채움
모르겠다
모르겠다
법고는 저리 우는데
모자람
하나 알았다
수마노탑 몇 번 돌아도
막힌 머리 돌지 않는다
정말 돌아야 할 돈
돌지 않아 쌓이듯이
욕심도
그릴 것 같아
죽비 들고 내리쳤다
---
*정암사 :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조계종 국보 332호 수마노답에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적멸보궁에 불상은 없다.

♧ 이별
누구나
제 무게만큼
소리를 갖고 있다
가볍다
민들레 홀씨
뚝 떨어진
동백꽃
가슴에
쿵
떨어지네
저리 하얀 편지도

♧ 불이문不二門
50년 함께 살아도
너와 나 둘이었다
만남과 이별도 나누지 말라는데
그 앞에
손잡고 서면
참 하나 알게 될까

♧ 묻지 말아
찻잔에 새소리 질 때
무슨 생각하냐 묻지 말아
민들레 홀씨 붙잡고
어디 가느나 묻지 말아
갈 곳을
모르는 것이
나 말고 또 어디 있을까

♧ 먼지를 털며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먼지가 말해야지
태초에 말씀보다 먼저
먼지가 있었다고
창세기
맨 앞에 써라
성경 위에 앉은 먼지
부처님
머리 위에 앉아
수많은 절도 받아봤고
십자가 위에 서서
그 많은 죄도 용서했지만
아가씨
구두에 앉아
외려 실컷 맞았다
기다린 사람 앉은 자린
먼지도 고울 거야
빗자루 들었는데
향기 먼저 찾아왔네
그렇다
만날수록 좋은
먼지까지 고운 사람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의 시(6) (2) | 2025.12.07 |
|---|---|
| 김항신 제주어 시집 '꼿봉오지 베려보라'의 시(4) (2) | 2025.12.06 |
| 조한일 시집 '낮은말 받아쓰기'의 시(13) (1) | 2025.12.04 |
| 강은미 시집 '흐린 날의 춤'의 시(1) (1) | 2025.12.03 |
|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4) (0) | 2025.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