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의 시(4)

by 김창집1 2025. 12. 5.

 

 

♧ 정암사에서

 

책 한 권 반야심경 배낭이 참 무겁다

있다와 없다 비움과 채움

모르겠다

모르겠다

법고는 저리 우는데

모자람

하나 알았다

 

수마노탑 몇 번 돌아도

막힌 머리 돌지 않는다

정말 돌아야 할 돈

돌지 않아 쌓이듯이

욕심도

그릴 것 같아

죽비 들고 내리쳤다

 

---

*정암사 :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한 조계종 국보 332호 수마노답에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적멸보궁에 불상은 없다.

 

 



♧ 이별

 

 

누구나

제 무게만큼

소리를 갖고 있다

 

가볍다

민들레 홀씨

뚝 떨어진

동백꽃

 

가슴에

떨어지네

저리 하얀 편지도

 

 



♧ 불이문不二門

 

 

50년 함께 살아도

너와 나 둘이었다

 

만남과 이별도 나누지 말라는데

 

그 앞에

손잡고 서면

참 하나 알게 될까

 

 



♧ 묻지 말아

 

 

찻잔에 새소리 질 때

무슨 생각하냐 묻지 말아

민들레 홀씨 붙잡고

어디 가느나 묻지 말아

갈 곳을

모르는 것이

나 말고 또 어디 있을까

 

 



♧ 먼지를 털며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먼지가 말해야지

태초에 말씀보다 먼저

먼지가 있었다고

창세기

맨 앞에 써라

성경 위에 앉은 먼지

 

부처님

머리 위에 앉아

수많은 절도 받아봤고

십자가 위에 서서

그 많은 죄도 용서했지만

아가씨

구두에 앉아

외려 실컷 맞았다

 

기다린 사람 앉은 자린

먼지도 고울 거야

빗자루 들었는데

향기 먼저 찾아왔네

그렇다

만날수록 좋은

먼지까지 고운 사람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