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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의 시(6)

by 김창집1 2025. 12. 7.

 

 

♧ 다시 봄이다

 

 

한겨울 방구석

옹크린 수컷 하나

위장한 카멜레온처럼 눈알 굴리며

세상을 곰곰이 헤아리고 있었네

 

비루하거나

분수를 넘는 생각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시덕거리며

때로는 꽃대궐

때로는 황폐 속을 스쳐지나왔네

 

다시 봄이다

솟구쳤던 한 올 한 올 생각들

머리카락을 타고 나와 세상에 안기는데

이미 죽어버린

젊은 날의 생각 몇 올

바람에 날리며 떨어져 나가네

 

마당 구석

속눈썹이 긴 명자꽃

시붉은 꼬리질을 해대고

머리에 은빛 연륜이 눈부신

수컷 하나

슬그머니 꽃대궐을 떠올리네

 

 



♧ 나 꺼

 

 

현관에 있는 내 신발

구두 둘 운동화 한 켤레

 

오랜만에 한 사흘 눈이 내렸네

곱게 차려입어야 할 이틀간

구두 두 켤레가 번갈아

나를 정중하게 인도해 주었네

 

눈 묻은 사흘째

현관에 나오는 나를 비룽이* 보는 운동화

난 누게 꺼우꽈

나도 눈길을 걷고 싶은데

한다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아도

운동화를 신고

눈길을 한참 밟았네

나 껀데

 

 

---

* 비룽이: '빠끔히'의 제주어.

 

 



♧ 향기

 

 

세상에 나와

꽃밭에서 살았네

내가 만난 사람들

고운 꽃들이었네

그 틈에 나도

피었다 질 때 됐네

내 꽃도

향기가 났을지 몰라

 

 



♧ 목심이여 안녕

 

 

일른 나문 해

날 ᄃᆞ련 뎅긴

목심광 마주 앚앗다

 

그 어이

이녁

잘도 하영 속앗저

 

날도 ᄌᆞ물아 가고

이제 이녁도 보내곡

나도 가사키여

 

이녁도 갈 디가 싯고

나도 갈 디가 이시난

멩심ᄒᆞ영 가라

 

 

 



♧ 허공

 

 

동지섣달 모진 바람을

중력으로 둥글게 버티던

마당의 재래감 한 방울

 

허공의 힘이 기어이

가지에서 손을 놓게 한다

그림자가 얼른 품는다

 

나도 우주의 공간에 있다

허공을 잡은 팔에 온 힘을 준다

바둥바둥 매달린다

그림자도 매달린다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 (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