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봄이다
한겨울 방구석
옹크린 수컷 하나
위장한 카멜레온처럼 눈알 굴리며
세상을 곰곰이 헤아리고 있었네
비루하거나
분수를 넘는 생각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시덕거리며
때로는 꽃대궐
때로는 황폐 속을 스쳐지나왔네
다시 봄이다
솟구쳤던 한 올 한 올 생각들
머리카락을 타고 나와 세상에 안기는데
이미 죽어버린
젊은 날의 생각 몇 올
바람에 날리며 떨어져 나가네
마당 구석
속눈썹이 긴 명자꽃
시붉은 꼬리질을 해대고
머리에 은빛 연륜이 눈부신
수컷 하나
슬그머니 꽃대궐을 떠올리네

♧ 나 꺼
현관에 있는 내 신발
구두 둘 운동화 한 켤레
오랜만에 한 사흘 눈이 내렸네
곱게 차려입어야 할 이틀간
구두 두 켤레가 번갈아
나를 정중하게 인도해 주었네
눈 묻은 사흘째
현관에 나오는 나를 비룽이* 보는 운동화
난 누게 꺼우꽈
나도 눈길을 걷고 싶은데
한다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아도
운동화를 신고
눈길을 한참 밟았네
나 껀데
---
* 비룽이: '빠끔히'의 제주어.

♧ 향기
세상에 나와
꽃밭에서 살았네
내가 만난 사람들
고운 꽃들이었네
그 틈에 나도
피었다 질 때 됐네
내 꽃도
향기가 났을지 몰라

♧ 목심이여 안녕
일른 나문 해
날 ᄃᆞ련 뎅긴
목심광 마주 앚앗다
그 어이
이녁
잘도 하영 속앗저
날도 ᄌᆞ물아 가고
이제 이녁도 보내곡
나도 가사키여
이녁도 갈 디가 싯고
나도 갈 디가 이시난
멩심ᄒᆞ영 가라

♧ 허공
동지섣달 모진 바람을
중력으로 둥글게 버티던
마당의 재래감 한 방울
허공의 힘이 기어이
가지에서 손을 놓게 한다
그림자가 얼른 품는다
나도 우주의 공간에 있다
허공을 잡은 팔에 온 힘을 준다
바둥바둥 매달린다
그림자도 매달린다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 (한그루,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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