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5)

by 김창집1 2025. 12. 9.

 

 

♧ 추억追憶

 

 

가을 잎새처럼 발자국을 지우며

어디서 와서 가는지 모른 채 살다가

사라지는 마음속 흔적들 기억하리라

 

탈색되어 가는 내 삶의 얼룩을 지우며

아름다운 일 행복했던 일 자취로 남아

가을 낙엽에 싣고 보내리라

 

고맙던 일 감사했던 일

그리움으로 깊이 남아 숨어있다가 꽃이 피는 봄격

잊힌 그날들 꽃으로 피워 내리라.

 

 

 

 

♧ 하루를 건너며

 

 

내가 가는 이 길이 바른길인지

그른 길인지 알지 못하고 누군가 걸었던

이 길을 따라 건너고 있다

 

아침 이슬을 가득히 채우고

비친 달 그림자처럼 빈 것들 사라져 가는

하루를 건너고 있다

 

연잎은 빗방울 받아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비리고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 비우는

그 지혜로 하루를 건넌다

 

삶도 이와 같아 삶의 무게를 초월하지 말고

하늘에 뜬 구름과 같은 자유를 누리며

축복 속에 하루를 건너면 된다.

 

 



♧ 사랑하는 당신에게

 

 

언제나 파도를 부르는 바람 소리 찾아들면

아련히 떠오르는 즐거운 가족들의 환영

 

당신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지만 “사랑합니다”

이 먼 길을 온 것은 우리를 위해서랍니다

 

한동안 우리를 갈라놓은 것이 숙명이라 할지라도

당신을 위해 해질 녘마다 희망의 기도 드려요

 

가장 소중한 사랑 정성으로 이루어 놓은

믿음의 사랑을 위해 바다 건너 당신에게 인사드려요

 

 



♧ 어머님 명복을 빌며

 

 

  어머님의 고통을 그때는 몰랐으며 아프거나 고통스러워도 표를 내지 않았고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 유년 시절을 생각하며 어머님은 저희들이 열심히 공부만 하도록 하셨던 걸 알았습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어머님이 다니셨던 길을 돌아보며 어머님의 자취를 그려보며 열심히 착실하게 사는 것만이 어머님을 위한 길이라는 걸 알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고 자식을 위한 투자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어머님도 그것이 바른 생각이었음을 알고 흐뭇했지만 이제 편안히 지낼 만하니까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머님이 열심히 다녔던 종교에서 정성껏 천도나 해드리는 일밖에, 엊그제 같더니 벌써 떠나보낸 지가 30년이나 흘렀습니다. 어머님의 명복을 법니다.

 

 



♧ 빚진 인생

 

 

해와 달이 웃으며 반겨주는 고마움

새들이 지저귀며 들려주는 우주의 노랫소리를

고맙게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가?

 

이 시간까지 나의 생명 허락해 주심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헤아릴 수 없는

자연에 진 빚을 갚으려 한 적 있었던가?

 

이제부터라도 빚진 것을 조금씩 갚으며

허락된 그날까지 베풀며 살기 위해

움켜쥐고 있던 욕심 하나둘 내려놓으며 살자

 

오래된 나무가 그늘을 기워주듯 시들면서

지는 꽃이 씨앗을 만들 듯 지금껏 살면서

빚진 것이 얼마일까 남은 생을 갚으며 살자.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 (그림과책, 2025)에서

                                        *사진 : 피안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