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입국신고서 – 김진숙
“나는 홍범도요, 28년 차 고려의 의병이요
방문 목적을 묻는 거라면 고려의 독립이요"
발자국 쩌렁쩌렁한
천둥 같은 그 이름

♧ 귀무덤 – 문경선
이름 잃은 귀들이 얼굴 없는 귀들이
국적 잃은 귀들이 소금 핀 귀들이
교토의 도시 한 모퉁이 포개져서 잠들어
절을 한다 그 앞에
조선의 넋 기리며
귀바퀴에 감장도는*
모국어를 꺼낸다
침묵은 얼음처럼 굳지만
봄의 힘 밀려온다
---
*감장도는 : 제주어로 ‘감도는’, ‘어른거리는’ 뜻입니다.

♧ 석주명 배낭 – 오영호
나의 분신이야 무명천 배낭은
노트와 연필 두 개 핀셋과 카메라
언제나 눈을 뜨고 있어
두근대는 마음으로
족보 찾아 걸었지
천지(天池)에서 마라도까지
포충망에 잡혀 온 수십만 팔도 나비들
영생(永生)의 표본실로 가는
250여 종 나비들,
이름 없는 나비들 지역의 명예 걸고
부전나비 산굴뚝나비 제주왕나비 지리산팔랑나비…
붙여준 이름표 달고
반도를 날고 있네
‘한라산이자 제주도요 제주도이자 한라산이다’*
조선 언어의 뿌리 금쪽같은 제주방언사전
제주학, 초석을 놓는
오돌또기 노랫소리
한국의 나빌레라
꿈속의 나빌레라
지성(知性)의 지도 위에 날아가는 곳은 어디
제주의 하늘을 보네
왕나비가 날고 있네
---
*석주명이 한 말

♧ 숨 – 이애자
웅웅웅 귀머구리로
우우우 말모레기로
대정땅에서 참말하며 살 수나 있었겠나
또 다른 바람의 문법
못살포라는 모슬포

♧ 한라둥지새란 - 장영춘
순간을 저장하랴 출렁이던 꽃잎 따라
세상사 부려놓고 꽃물처럼 고인 마음
숲속의 한라둥지새란 귀족처럼 앉았네
있는 듯 없는 듯, 막연한 기다림으로
다시 환생한다면 저 꽃으로 피고 싶다
무채색 실루엣 걸치고 고고하고 고결하게
*계간 『제주작가』 2025 가을호(통권 제9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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