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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5)

by 김창집1 2025. 12. 16.

 

 

♧ 어떤 입국신고서 – 김진숙

 

“나는 홍범도요, 28년 차 고려의 의병이요

방문 목적을 묻는 거라면 고려의 독립이요"

 

발자국 쩌렁쩌렁한

천둥 같은 그 이름

 

 

 

♧ 귀무덤 – 문경선

 

이름 잃은 귀들이 얼굴 없는 귀들이

국적 잃은 귀들이 소금 핀 귀들이

교토의 도시 한 모퉁이 포개져서 잠들어

 

절을 한다 그 앞에

조선의 넋 기리며

 

귀바퀴에 감장도는*

모국어를 꺼낸다

 

침묵은 얼음처럼 굳지만

봄의 힘 밀려온다

 

---

*감장도는 : 제주어로 ‘감도는’, ‘어른거리는’ 뜻입니다.

 

 



♧ 석주명 배낭 – 오영호

 

나의 분신이야 무명천 배낭은

노트와 연필 두 개 핀셋과 카메라

언제나 눈을 뜨고 있어

두근대는 마음으로

 

족보 찾아 걸었지

천지(天池)에서 마라도까지

포충망에 잡혀 온 수십만 팔도 나비들

영생(永生)의 표본실로 가는

250여 종 나비들,

 

이름 없는 나비들 지역의 명예 걸고

부전나비 산굴뚝나비 제주왕나비 지리산팔랑나비…

붙여준 이름표 달고

반도를 날고 있네

 

‘한라산이자 제주도요 제주도이자 한라산이다’*

조선 언어의 뿌리 금쪽같은 제주방언사전

제주학, 초석을 놓는

오돌또기 노랫소리

 

한국의 나빌레라

꿈속의 나빌레라

지성(知性)의 지도 위에 날아가는 곳은 어디

제주의 하늘을 보네

왕나비가 날고 있네

 

---

*석주명이 한 말

 

 



♧ 숨 – 이애자

 

웅웅웅 귀머구리로

 

우우우 말모레기로

 

대정땅에서 참말하며 살 수나 있었겠나

 

또 다른 바람의 문법

 

못살포라는 모슬포

 

 



♧ 한라둥지새란 - 장영춘

 

순간을 저장하랴 출렁이던 꽃잎 따라

 

세상사 부려놓고 꽃물처럼 고인 마음

 

숲속의 한라둥지새란 귀족처럼 앉았네

 

있는 듯 없는 듯, 막연한 기다림으로

 

다시 환생한다면 저 꽃으로 피고 싶다

 

무채색 실루엣 걸치고 고고하고 고결하게

 

 

             *계간 『제주작가』 2025 가을호(통권 제9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