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란 꽃
오며가며
무심하였네
외딴길 풀숲에 숨어
너무 작아서 슬픈 꽃
바람이 지나가고
나비도 스쳐가고
숨겨진 평화
소곤대는 사랑
무릎 꿇고서 보았네
몰래 반짝이는 별들

♧ 달맞이꽃
그리움을 앓다가
동산에 달이 오르면
홀로 피는 달빛 한 송이
그대의 창가에
애달픈 연가여
세상은 잠이 들고
보름달 찰랑일 때에
장독대 정화수에 내리는
달빛 한 송이
어머니의 가슴이 환하여라
귀뚜라미 고적한 그믐밤
천지에 불빛 하나 없어도
그대 가슴에서 피는
달빛 한 송이
사랑은 슬프지 않아라

♧ 내도 바닷가에서
깊은 밤
내도 바닷가에 서면
사르륵 사르륵
물밀어 오는 소리
물밀어 가는 소리
까마득한 날
길을 떠나
몇 겁을 굴려오는
몽돌의 노래
사르륵 사르륵
잠 못 드는 수많은 밤
깎고 다듬어서
품어 안은 새알 하나
꿈에 그리던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나.

♧ 즐거운 허밍
두어 평 텃밭에
무 배추 상추, 씨를 뿌리고
토닥토닥 정성을 덮었으니
한겨울이 푸를 것이다
동짓달 긴긴 밤 별빛 내리고
반짝 여우햇살 분 바르고 가면
바람(望)인 듯, 바람인 듯
허밍, 즐거운 허밍
파릇파릇,
노란 숨소리
투명한 눈금으로
키를 재는 즐거운 허밍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철철
멀고 먼 강물이 흐르는
허밍 즐거운 허밍

♧ 가을엔 2
가을엔
가을에 물들게 하소서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고달픈 사람
빨강 주황 노랑
물색 곱게 들게 하소서
교회 뒤 지붕 낮은 집
동그란 소녀 일기장에
고이 간직한 빨간 단풍잎
손주 업고
공원 벤치에 앉은 그 소녀
손바닥에 은행잎 하나
살짝 붉히는 미소이게 하소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 (푸른생각,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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