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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14)

by 김창집1 2025. 12. 18.

 

♧ 파란 꽃

 

오며가며

무심하였네

 

외딴길 풀숲에 숨어

너무 작아서 슬픈 꽃

 

바람이 지나가고

나비도 스쳐가고

 

숨겨진 평화

소곤대는 사랑

 

무릎 꿇고서 보았네

몰래 반짝이는 별들

 

 



♧ 달맞이꽃

 

그리움을 앓다가

동산에 달이 오르면

홀로 피는 달빛 한 송이

 

그대의 창가에

애달픈 연가여

 

세상은 잠이 들고

보름달 찰랑일 때에

장독대 정화수에 내리는

달빛 한 송이

 

어머니의 가슴이 환하여라

 

귀뚜라미 고적한 그믐밤

천지에 불빛 하나 없어도

그대 가슴에서 피는

달빛 한 송이

 

사랑은 슬프지 않아라

 

 



♧ 내도 바닷가에서

 

깊은 밤

내도 바닷가에 서면

 

사르륵 사르륵

 

물밀어 오는 소리

물밀어 가는 소리

 

까마득한 날

길을 떠나

몇 겁을 굴려오는

몽돌의 노래

 

사르륵 사르륵

 

잠 못 드는 수많은 밤

깎고 다듬어서

품어 안은 새알 하나

 

꿈에 그리던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나.

 

 



♧ 즐거운 허밍

 

두어 평 텃밭에

무 배추 상추, 씨를 뿌리고

토닥토닥 정성을 덮었으니

한겨울이 푸를 것이다

 

동짓달 긴긴 밤 별빛 내리고

반짝 여우햇살 분 바르고 가면

바람(望)인 듯, 바람인 듯

허밍, 즐거운 허밍

 

파릇파릇,

노란 숨소리

투명한 눈금으로

키를 재는 즐거운 허밍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철철

멀고 먼 강물이 흐르는

허밍 즐거운 허밍

 

 



♧ 가을엔 2

 

가을엔

가을에 물들게 하소서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고달픈 사람

 

빨강 주황 노랑

물색 곱게 들게 하소서

 

교회 뒤 지붕 낮은 집

동그란 소녀 일기장에

고이 간직한 빨간 단풍잎

 

손주 업고

공원 벤치에 앉은 그 소녀

손바닥에 은행잎 하나

살짝 붉히는 미소이게 하소서.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 (푸른생각,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