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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의 시조(10)

by 김창집1 2025. 12. 16.

 

♧ 오래된 그림

 

좁은 골목 본전다방은 반시계 방향이다

근엄했던 아버지 입가 미소 번지던 곳

퇴근길 덧댄 시간이 그림자도 감추던

 

돌부처 무릎 위로 미니스커트 발칙하다

사르르 설탕 녹듯 욕망도 고독도 벗어든 채

귀 걸린 웃음소리가 겸연쩍게 퍼졌지

 

주고받던 무게만큼 본전은 찾았을까

호기로운 레자 지갑 잔돈 몇 푼 공허했을,

남겨 온 에스프레소 본전 생각 나던 날

 

 



♧ 두 가시

 

대못에 찔리면서

정이 든다 생각했지

 

감쪽같은 짜깁기에

또 한 번 속아줬지

 

펑크 난 타이어마냥

줄행랑도 못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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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시 : 제주어로 '부부를 뜻함.

 

 



♧ 송냉이골 사람들

 

저 멀리 깜박이는

삼등성 별님들아

 

배롱꽃 이불 삼아

여태 꿈을 꾸는가

 

봉긋이

달이 오르네

피식 한번 웃어봐!

 

 



♧ 계요등꽃 붉어요

 

'마지막 벌초우다'

촌수 모른 호미질이

 

정인의 손길 닮아

손 내밀면 안 놓을 듯

 

봉긋한 실루엣 하나

햇살 슬쩍 비춰요

 

한 시절 구전으로 남아

내력을 이어오던,

 

시류 따라 옮겨야 할

그 짐작은 하는지

 

그녀의 외딴집 뒤로

계요등꽃 붉어요

 

 



♧ 담쟁이 구술 생애사

 

  평화시장 가는 길목, 신의 손짓 닮았더라

 

  시련 속에 한데 뭉치던 반세기 전 평화 이야기 날줄 세우는 담쟁이처럼 목 힘줄이 불거진다 손 찔리고 잘리면서 붉은 꽃수 놓았지 한 땀 한 땀 박음질마다 밥알들 줄지었지 가난은 열다섯 살 가장을 동정하지 않더라 창이라도 있었다면 훨훨 날아갔겠지 끊기지 않는 화학사처럼 시간은 길고 길었지 쪽잠에 단꿈이 깨져도 아쉬움은 없더라 기쁨과 슬픔, 소박한 꿈도 나눠가며 그때도 지금처럼 실핏줄 터지던 밤 평등은, 공정한 세상은 감언이설에 묻히더라 불행도 행복도 시절 인연, 그게 내 몫이더라

  당숙모 눈물샘이 터진다 핑그르르 핑그르

 

  그래도 늘 희망은 있지, 빈손 들고 또 드네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 (목언예원,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