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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의 시(6)

by 김창집1 2025. 12. 23.

 

♧ 언니가 온다

 

  태풍에 휩쓸린 집은 바다가 되었다 바다를 보며 소원을 빌고 잠을 자면 지느러미가 생길까 미역국이 끓는다 엄마가 성게를 팔고 남은 빈 망사리에 언니 시집을 건져 담고 오는 날

 

  예감이 들어맞을 때마다 사라지는 몽고반점 언니와 누가 더 멀리까지 달리나 내기를 했었다 여름 끝까지 먼저 달려왔을 때 미역국 그릇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신발에 물이 고인 채 찰박찰박 마당만 뛰어다니는 언니 뒤만 따라오는 돌고래 언니 말을 돌고래만 알아들었을까

 

  언니 대신 시집을 읽으면 언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꽃병에 꽃을 꽂고 팝송을 들으며 언니를 베끼는 밤에는 무인도가 생겨났다 어둠은 무인도의 언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라진 것들은 모두 무인도에서 일기로 쓰인다 언니가 뛰어다니던 마당을 엄마는 어금니를 꽉 물고 바라본다 가을이 가고 파도는 오고

 

  겨울이 가고 파도는 온다 쓸모없어 가여운 밤이 혓바늘로 남았다 미역국 한 그릇을 비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민은 무인도에서 달콤한 꿈으로 바뀐다는데

 

  오래전부터 뛰어오는 소리처럼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태풍에 휩쓸린 집이 다시 바다의 망사리 위로 떠오르듯 돌고래가 쉼표를 그리며 자맥질하는 밤이면 언니의 생일이 바다 건너에서 기울고 있다

 

 



♧ 전복죽

 

걱정이 있다

걱정이 있어 전복죽을 끓인다

 

걱정이 있어 우울은 물옷에 넣어 두었고

걱정이 있어 소금기 있는 몸도 씻지 않고

젖은 발로 너를 기다린다

 

걱정은 내가 네 삶을 조금 가져 보는 일

네 삶이 나와 맞는지

지는 해 보듯 지켜볼 수 있는지

 

겨울에 따뜻한 보리차를 챙겨 줬을 때

네 표정에도 걱정이 있다

함께만 있어도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고

 

견디는 무게를 알아 버렸으니

네 불면의 밤에

전복죽은 맑지 않겠구나

 

걱정이 있어

걱정이 주는 사랑 있어

더 깊이 웅크리는 등이 있다

등도 표정이어서

등이 등에게만 보이는 시간

 

등이 등만 보고 지내는 시간에도

물옷 속의 맨살이 식지 않게

전복죽이 식지 않게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싼다

 

 



♧ 백중사리

 

정오가 포도알처럼 등글게 차오를 때

채석장에 나갈 수 없는 남자 울음이

산달 여자 배를 뚫고 있다

서로서로 안으며 뻗어 나가는 바다를 보며

여자는 신맛 나는 단어를 읊조린다

포도가 몸을 통과하는 상상을 하는 동안

빈 접시 위에 떠나야 할 집, 길과

버려야 할 희망을 펼쳐 본다

 

귀를 열면 물길도 열리고

 

여자는 혀 밑에 고인 침을 삼키며

어디로 걸어야 할지 짐작할 수 없는

넝쿨처럼 얽힌 청춘의 방향을 풀어 본다

남자는 굴삭기 운전하던 손으로

채석장 수직 암벽처럼 쌓인

밀린 고지서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푸석한 여자의 손을 포개자

거센 조류가 밀려온다

 

여자는 남자의 닳고 부스러진 손톱을 매만지다

푸른 하늘을 가릴 듯 부풀어 오르는 검은 바다에

엎드려 빌듯 몸 굽히며 물옷을 입는다

어느 여인의 물숨은 우는 소리 같다 했다

 

 



♧ 게우젓

 

장맛비도 오래 맞으면

겨울 폭설처럼 몸살을 앓는다

그런 날은 꼭 게우젓을 먹어라

 

몸살에 온몸이 아파도 어디가 아픈지 몰라

마음 짚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 찾아내고

빈자리가 깊은 줄을 그제야 알아

몸을 부르르 떤다

깊은 곳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숨을

너에게 먹인다

 

몸살에 아무 데도 마음 쓰지 말고

게우젓만 생각해라 오늘 게우젓

만드는 법을 잘 보고

마음 빈자리에 넣어라

바닷속에서 숨은 참아도

아픈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은 못 참아

물을 삼켜 코가 찢어질 듯 아프고

 

눈앞이 캄캄할 때

게우젓 먹일 욕심으로 물 밖으로 나온다며

울먹이며 입안에 넣어 주려다 엄마는 자기 입에 먼저 넣는다

 

게우젓 맛이 이 정도다

 

죽기 전 게우젓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다더니

오늘 만든 게우젓이

엄마 유언 같다는 생각을 하며

울먹이다 게우젓 흘리자 날름 주워 옴막 삼킨다

 

게우젓 맛이 이 정도다

 

슬픔이 볕을 찾는다

 

 



♧ 밭담

 

인생이 가벼운 날은 무거운 돌을 들고

인생이 무거운 날은 가벼운 돌을 들었다

 

내일은 무엇을 들고 살아야 할지

중심을 다시 한번 보고

멀리 가고 싶은 방향의 돌을 쌓았다

 

무겁고 가벼움은

언제나 분주하지만 저녁이면 늘

마음 빈 곳이 보여

바람이 잠시 멈춰 주면

첫눈 속에 묻힌 눈동자들

 

컴컴하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감정이지만

무너지지 않는 유년의 필체

손과 발로 단단히 세운 바다

 

다가오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는

 

돌과 바람과 파도와 아버지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걷는사람,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