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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2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5. 12. 24.

 

♧ 대략 난감 – 김정원

 

낯익은 더벅머리가 시외버스터미널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반갑다고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함부로 세게 쳤다

 

그가 고개 돌려 뒤돌아봤을 때

 

외지에서 온 땅투기꾼같이 낯선 그가

'이 새끼 뭐~야?'라는

말도 하지 않아서 더더욱 불안하게

 

별안간 별이 서너 개 번쩍였을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바치고

온몸에 문신한 듯 목덜미에 검은 용 발톱이 날카로운

거구가 일어섰을 때

 

“미안합니다. 제 친구인 줄 알고서…….”

 

입이 얼어붙어 제대로 사죄하지도 못하고

눈알을 내리깔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민망함과 떨림,

그 순간이 첩첩이 쌓이고 눌린 영원한 빙하 같았던

 

1979년 고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이브

자취방에서 빈 김치단지 들고 시골집에 가던 때였지, 아마

 

 



♧ 갈망의 말 – 김종욱

 

하늘, 바다,

저 멀리로 환하게 이어져

끝도 없이 걸어가는 푸른 사막

돌아오지 않는

푸른 빛 속에서

익사한 포도빛 입술

입 맞추고 입 맞추네

하늘에 바다에 파랗다는 말에

파랗다는 말에 든 푸른 멍에

이 밤에

 

이 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어렴풋이 이해할 것만 같은 사람도

한번쯤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네

그것은 창문에 부딪혀

파랑과 초록을 쏟아 낸 붉은 빛이

피를 흘리듯이

작은 내 방에까지 스며들어

아침마다 속삭여 주는 말

 

 



♧ 달리는 봄 – 박구미

 

봄바람 타고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배달 상자

 

짜장면 그릇이 흙먼지 속을 뒹굴고

아직 뜨거운 짬뽕 국물이

골목으로 흘러내린다

 

누군가는 배고프고

누군가는 늦었고

누군가의 한숨도 굴러간다

 

비닐 사이 빠져나온 단무지 조각

담장 넘어 구경하던 개나리도

삐악삐악 달려가자 하는데

 

되돌아온 오토바이

엎어진 그릇과 상자만 태우고

다시 떠나간다

 

바람만 불어넣고 가버린

얼룩진 골목엔 눈치도 없이 

햇살은 눈부시게 내려앉고

 

봄바람 타고 싶어

자꾸 뛰는 가슴,

부릉부릉 시동만 거는 봄

 

 



♧ 상사화 – 박태근

 

밤낮으로 뗐어

매미가 하도 울어 보채

넘 서둘러 알몸에 꽃핀 상사화

어두움이 가렸어도 참 곱소

그 낯에 스며든 당신은 더 곱구려

승강기 탈 줄 알려는가 모르겠네

멀미하지 않으면 백자 속에 몸 가려

갓방* 시렁**에 고이 모셨다

사람 잠들면

슬쩍 건너와 홑청 함께 덮고

소곤소곤 얘기하다

잠 한번 들었으면 쓰겠소

 

---

* 집 가장자리에 있는 방

** 방에 긴 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선반

 

 



♧ 흑두루미 – 권순자

 

바람을 타고

흑두루미

생의 춤사위 유연하다

한순간 격렬하다

 

새벽 바다에 풀어지는 비안개 뚫고

차오르는 물고기 춤

빛에 노출된 위험한 춤

 

춤이 춤을 삼키는 순간

 

바다는 잘못이 없다

품어줄 뿐

키워줄 뿐

 

춤이 유죄

불온한 춤사위가 유죄

현란한 춤이 시야를 삼켰으므로 유죄

 

바람은 허공길 따라

제 갈 길 유유히 간다

 

 

                  *월간 『우리詩』 2025년 12월호(통권 제45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