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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의 시(7)

by 김창집1 2025. 12. 25.

 

♧ 흐린 날

 

한낮인데

어스름하다

 

온갖 상념 몰려와도

소중한 것 하나 잃어버린 듯한 느낌

허전하고 외롭다

 

해를 가렸던 검은 구름

잠깐 가슴을 열었다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나를 붙잡는 내 그림자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 동반자

 

오늘도

눈 뜨이니

날 떠밀며

일으키네

 

이리 기웃

서리 기웃

세상과 눈 맞추게 하네

 

언젠가

함께할 긴 잠을

등에 진

내 그림자

 

 



♧ 모르는 사이

 

내 그림자는

나에게 할 말이 없다

 

내가 무엇을 물으면

같은 말 되물을 뿐

대답하지 않는다

나도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림자도 나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서로가

잘 모르는 사이다

 

 



♧ 오늘은 침묵

 

오늘은 약속 없어 정처 없을 날

어둑한 골목에서는 맥을 못 추는

내 인생의 공범 내 그림자

내리 사흘 술에 지친 모양이다

 

해 질 녘 하늘은 맑은데

길고 걸쭉해진 내 그림자

풀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세상도 어수선하니 집콕 합시다

 

내 그림자도 나이가 들어간다

 

 



♧ 내 그림자는 내 빛

 

내 그림자는

문득문득 솟구치는 생각을 좇아

쏘다니기를 좋아한다

 

가끔

보이는 꽃과 함께 피고 지기도 한다

내 그림자는

탑동 파도 소리와 친하고

한라산에 잠시 앉은 구름을 반기며

밤하늘 적막 소리와 대화를 좋아한다

 

나와 똑같이 술잔을 들면서도

내 그림자는

어둠과 밤안개 새벽이슬 속에서

나를 부축하고 일으켜 세운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

무작정 나를 좋아한다는 것

내 그림자는 나의 희망이며 빛이다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 (한그루, 2025)에서

                                                       *사진 : 영장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