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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의 시(1)

by 김창집1 2025. 12. 26.

 

♧ 시인의 말

 

첫눈이 지나고도

한참을 아팠다

 

눈 내려 그런 줄 알았다

 

아프다 말하지 못했다

 

세상이

더 아팠으므로

 

올리브 묘목 한 그루 작은 화분에 심었다

 

내게도 꿈이 생겼다

 

                                       2025년 가을

                                               김진숙

 

 



♧ 당신의 밤은 어때요

 

택배 상자를 열자

쏟아지는 사유의 밤

 

잘 여문 밤톨 하나 손에 쥐고 만져 본다

 

고맙고 단단한 질문

당신의 밤은 어때요

 

키보드 자판들이

어둠을 다듬는 동안

 

밤의 가장자리에 웅크린 당신과 나

 

아팠어, 말하지 않아도

먹먹한 밤이 고이고

 

지난 계절 나의 뜨락은

생밤 같은 달의 나라

 

겹겹이 포개 두었던 불면을 다독이며

 

이제는 아프지 말자

또르르 굴러간다

 

 



♧ 안녕, 나야

 

그냥, 이라는 말을 ‘아프다’로 듣는다

 

그럭저럭 지낸다는 ‘외롭다’로 받아 적는다

 

새벽은 궁리가 많아

 

의역을 자주 한다

 

 



♧ 못의 기분

 

옛 교실 나무 바닥은 온통 못투성이야

꿈에서 깰 때마다 발바닥이 축축해

 

마음도 헐거워지면

자주 피를 흘리는 법

 

서랍을 열어 보면 누군가 뒤돌아보고

헝클어진 낙서장에 녹슨 문장 한줄

 

무심코 찔리곤 하지

깊게 박한 그 겨울

 

모처럼 못처럼 비 오는 그런 날이면

하늘 항해 바로 선다는 못의 기분까지

 

맥락도 검정도 없이

밤 편지를 쓰는 나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눈동자를 보세요

언제든 뽑아 쓸 눈물쯤으로 생각하지만

 

세차게 내리칠수록

완결되는 당신 같아

 

 



♧ 아직 처마 밑이다

 

신발 끈이 풀린 채 타닥타닥 오는 비

양철 지붕 그 아래 낡아 가는 골목에선

누군가 놓친 사랑도 자주 비를 맞는다

 

혀뿌리에 눌러앉아 잘 떼어지지 않던 말

미안해, 그 흔한 말도 모퉁이 돌아 나가

지금 막 뛰어내린 나는, 아직 처마 밑이다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 (걷는사람, 2025)

                                *사진 : 물꿩 꺼벙이(살아있는 지구 - '민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