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초대석]

♧ 마음터널 공사 중 – 김창호
짚차 하나 제한 속도를 무시하고
질주한다 어둠을 두 가닥으로 가르며
무한을 꿈꾼다 짚차 앞을 가로막던 어둠이
부서진다 잠복 중이던 소란이
터져나온다 충衝 • 돌突 • 사思 • 고考
나의 사고가 충돌한다
바다가 진한 소금을 삼키고
파란 고뇌를 토해낸다 고요한 물고기가
뽀끔뽀끔 기포를 내뿜는다 수면을 박차 올라
하늘 변경으로 비상한다
이상기온으로 하늘은 바튼 소릴 낸다
가래 끓는 소리다
추월하는 짚차가 충돌사고를 낸다
그 바람에
뚫고 나가지 못하는 터널에서 꿈은
전진할 수도 없다
후진할 수도 없다
하얀 바람은 어둠을 쓸지만
어둠은 쓸리지 않고
절망의 터널은 지하로 뚫려있다
재채기할 때 튀는 침 같이
희망은 꽤나 빠른 초속으로 튕겨나간다
그 누가 달아나는 희망의 꼬투리에
시치미를 달 수 있을까
내겐 남아 있는 힘이 없다
붙잡을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다
내겐 참말로 힘이 없다
당장에 밀고 일어설 힘이, 막힌 주사기의 압력에
빼도 박도 할 수 없다
마음 속 수십 억 감정 케이블은 현재 공사 중

♧ 미움의 질량 – 문영
누군가에게 말한 적 있던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무거운 일인지
뜨거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리는 고통일지도 몰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어린 아이가 바람에 찢겨진 여린 잎처럼 바들바들 온몸을 떨던 두려움인지도 몰라
차라리 모를수록 좋았을 시간들을 기어코 알 수밖에 없도록
한 꺼풀씩 제 눈의 막을 벗겨내야 하는 고문인지도 몰라
있어야 할 것을 잃었을 때 없어야 할 것을 안고서라도 바득
바득 살아야 할 숙명 같은 건지도 몰라
시시때때 세상의 기울기에 물들어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의 너와 나라면
누군가는 말해줄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얼마만큼 미워해야
가벼워질 수 있는 질량인 건지

♧ 공양 – 배귀선
종일 빈 텃밭 헤적거려도
늘 허기진 내 집 암탉
나만 보면 넘어질 듯 달려옵니다
수챗구멍 퉁퉁 불은 밥알 찌꺼기, 나중에는
무심한 내 휘파람 소리마저 말끔히 쪼아 먹습니다
허드레 것들 다 받아먹고
오순택* 무엇을 하나
아침나절 둥우리에 손을 슬쩍 넣어봅니다
보드랍게 감겨지는 손바닥 안에
겨우내 시린 가습 품어주는 시 한 구절
따스하게 적혀집니다
오늘은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맹승한 밥상머리
오순택 알 하나 민들레꽃으로 올렸습니다
밥 한 숟가락 더 퍼 담은 시인은
밥그릇에 묻은 노란 마음까지
말끔하게 닦아 먹습니다
밥 먹는 심심한 일, 공양이라 받들어 이르기를
알 것도 같습니다만
밥벌이 탁발 다니는 나도
허드레 것 쪼아 알을 낳는 오순택도 모른 채
한 울타리로 정들어갑니다
---
*닭 이름

♧ 서운암 봄 – 김양희
봄볕이 내려앉자 설법하시는 항아리
금당화 할미꽃 옹기종기 둘러서서
가득 든 말씀도 듣고
텅 빈 말씀도 듣는다

♧ 24시 편의점 – 변현상
이대로 끝을 낼까
이젠 무대 그만 설까
노래를 부르지만
인기 없는 무명가수
아니다
잠들지 않는
음악은 빛 뿜는 것
외딴집 닮은 동네
리듬 없던 골목 어귀
유명악단 리 모델링
무대를 꾸미더니
환하게
노래를 한다
낮과 밤이 따로 없다

♧ 겨울 부석사 – 임성화
한 걸음 한 걸음씩 무량수전無量壽殿 다가갈 때
내 업보 덜어주려나 백설기로 쌓이는 눈
초심을 다잡으려고 괄약근을 조인다
풍경도 울지 않고 보살님도 안 보이고
산 텅텅 절도 텅텅 다 비운 천지 간에
반 깨친 오색딱따구리 목탁을 치고 있다
채울수록 허한 생각 놓지 못해 돌아설 때
내려놓고 가라 하는 등 뒤의 배흘림기둥
내 마음 다 안다는 듯 눈웃음이 따갑다
*2025년 하반기 『혜향문학』 제2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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