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의 시
나의 詩는
겉보리 서 말
처가살이
안 해도 될 만큼
꼭 그만한 양의
식량인
겉보리 서 말
나의 詩는.

♧ 백아白夜
네 생각으로 해가 지지 않아
머릿속이 하얗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귀를 모아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림자도 사라졌다
방향을 잃은 나이 든 사내
막막히 막막히 가고 있다.

♧ 눈물꽃 한 송이
한평생이
눈물 한 방울로 피우는
한 송이 꽃인가
번개와 천둥
벼락으로 때리고
장대비로 씻어내리는
부질없는 걱정과 격정
쓸데없는 열성과 열정
보잘것없는 허욕과 과욕
개미자리만도 못한
꽃 한 송이
눈물겹게 피어 하릴없이 지는 날
저무는 목로주점이나 기웃거리다
홀로 술 마시는 이 있거든
슬몃 옆에 자리하리.

♧ 은비령隱秘嶺․ 1
사는 것
사람으로 사는 것
은비령,
은비령을 가는 일
백두대간 능선 지나
아무도 모르는 재,
아름다운 은비령을 넘는 일
아니, 아니랴
마음이 하늘인 사람들
은비령을 찾아가
곁말에 귀 주지 말고
곁가지 하나 혼들리지 않고
은비령을 넘자
아무도 안 넘은 고개
은령, 비령,
은비령!

♧ 작두콩
꽃이 피어도 소용없다
비가오니
벌 나비가 날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작두라도 별수 없다
환하게 피었던 꽃
누렇게 지고 만다.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놀북, 2025)에서
*사진 :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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