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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돌돌돌 흘러온 시간'의 시(2)

by 김창집1 2026. 1. 5.

 

♧ 리즈의 꿈 - 김미향

 

절대로 아비 없이 태어나지 않았어

고개 들어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했지만

어머닌 아비 몫까지 매를 들어 내리쳤지

 

푸르딩딩 꽃물처럼 새겨진 주홍글씨

아비 없는 자식이라, 그 정도 누명이야

가창골 수몰지구에 맥없이 갇혀두고

 

왼편으로 오른쪽으로 들불같이 피어난

혁명의 구절초는 우리들의 아버지

바람에 날아가거라 방방곡곡 내리거라

 

지금도 흐르고 있는

눈물 마르지 않아

알토란 같은 씨알

손가락으로 꼭꼭 심어

 

이 생에 다할 때까지 꽃 피는 것 보고 싶어

 

 

 

♧ 루淚 - 김순국

 

폐광된 레일 따라 우리들은 걸어갔네

수그려 걷는 레일 옆 붉은 물이 흘렀네

심장이 너덜너덜 떠가는 작은 물길 흘렀네

 

눌린 꽃송이들이 물러져 삭아질 때

동굴 안 송송한 물기 흙범벅을 만들었네

물 진흙 밟고 선 내 발 꽃을 밟고 있었나

 

삭은 몸 눈물 자루 덧댄 벽이 울고 있네

눈물 자루 엉긴 넋들 여태까지 울고 있네

내 평생 몰랐던 여기 눈물 더미 터지네

 

 

 

♧ 쇳내의 바다 – 고혜영

 

파도는 바다를 가로지르지 않는다

홍합 앞에 떠오르는 코발트 광산의 눈물

갱 속에 갇힌 넋들이 쇳내로 스며들고

 

총부리 앞에 스러진 우리네 가족들이

아빠야 오빠야 부르며 메아리로 아직 남아

해조의 뿌리로 일어나 나를 불러 세운다

 

아직도 바람이 묻는다 그 무거운 진실을

섬의 새벽 붉게 젖어 입 다물게 한 그 일

너와 나 우리는 유족, 망각의 파도를 넘는다

 

 

 

♧ 렘수면에 흐르는 – 강영미

 

꿈속에서 당신은 사진처럼 웃어요

흑백의 행간을 접으며 물결이 밀려오면

쓰다 만 일기장에선 낱자들이 쏟아졌죠

 

평생 열어두신 어머니의 문 앞에서

줄과 열 지워 내다 베인 손을 보이네요

연초록 웃음소리가 밤새 베개를 적셨어요

 

총구 앞에서는 글자들도 날이 서요

한 번씩 돌아누우니 찬 바닥을 더듬으면

가창골 가습에 묻은 말이 출렁거려요

 

 

 

♧ 또다시 추모일이 다가오면 – 허경심

 

가지마다 꽃이 피었다고 방심하지 마라

행방불명인 추모비 저 하나 세워두고

묘비로 세운 그 이름 저들을 잊지는 마

 

말 없는 시댁 어른 술 한 잔 올리는 봄

칠십칠 년 부르지 못한 그 이름, 아버지

상록수 푸른 가사가 자꾸 떨고 있었다

 

 

        *젊은시조문학회 작품집 『돌돌돌 흘러온 시간』 (통권 제11호,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