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을이 주는 연민 – 김창화
늦가을의 단풍진 가랑잎들
하늬바람에 휘둘리며
지난여름의 여운을 빗질하고 있다
다가드는 침묵의 하얀 계절은
내게 또 한 바퀴의
연륜을 휘두를 것이다
살아온 날에 대한 회고
살아갈 날에 대한 상념
아직도 못 다한 미련을 짊어진
내 어깨 위론 황혼이 스미는데
이 가을은
내 삶의 갈피를 채우며
내게 또 한 계절의
아쉬운 미련을 남기려 한다.

♧ 목수木手라는 이름으로 - 淸岩 문경훈
나는 나무를 다스리는 목수다
거친 손과 굵은 팔뚝으로
나무를 토막 내는 억장이지만
여태 다듬지 못한 나무들과
바로 세워야 할 비스듬한 기둥들과
제 곳에 들어가 있어야 할 문짝과
비바람 눈보라를 가려줄 지붕과
벽 모서리쯤에 세워둔 나의 세월과
반듯해지라고 깎아내는 대팻날과
상어 이빨같이 날 선 톱과
세상의 모든 높이를 재는 수평과
먹줄 통筒과 같이 사는 나는 먹통이다
그렇게 먹줄로 그어진 세상이 나의 길이다.

♧ 지금 그곳은 – 강순복
예기치 않은 이유로
병실에 누워 계신 선생님의 모습,
힘든 과정을 마주한 채
몸과 마음의 혼동이 계속됩니다.
하지만 쉼이 있습니다.
잠시 머물며,
깃털처럼 작은 울림을 느끼는 순간,
그 자리에서 배려와 심성으로
고뇌와 아픔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빛납니다.
삶의 진리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지켜야 할 디딤돌이
그곳에 있습니다.
훗날, 따뜻한 햇살 속에서
선생님의 웃음이
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날을 향해,
지금 이 순간을 견딥니다.

♧ 수석 – 강승
나는 원래 지천에 널브러진
돌멩이에 불과했다.
내가 돌이 되어 세상에 던져진 날부터
우주의 미아로 살아야 했다.
광야에서 보낸 모진 세월동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들
천년의 풍파에 닳고 닳아
거칠고 모난 부분 다 털어냈다.
햇볕 스며들고
바람불어 좋은 날 천운이 임하여
내게 필이 꽂혀 반해버린
주인 잘 만난 덕택에
후한 대접 받으며
보좌에 앉아 지내는
귀한 몸, 수석으로 부활했다.

♧ 이월의 행복 – 김동인
이월의 끝자락
밤사이 실내 정원에 뿌려진
짙은 천리향 향기가 흠뻑 취하게 한다
향기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짙은 향기가 위로와 기쁨일 뿐이다
오랜 추위를 묵묵히 이겨낸
노고에 대한 뜻밖의 선물이다
마당에 활짝 핀 수선화도
버텨낸 겨울 만큼 향기가 그윽하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 수북하다.
*애월문학회 편 『涯月文學』 2025(통권 제16호)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월간 '우리詩' 1월호의 시(1) (1) | 2026.01.12 |
|---|---|
| *계간 '제주작가' 2025 겨울호의 시(1) (1) | 2026.01.11 |
| 김종호 시집 '강나루의 대화'의 시(완) (0) | 2026.01.09 |
| 한희정 시조집 '립스틱 지우는 저녁'의 시조(11) (0) | 2026.01.08 |
| 한라산문학 제38집 '글왓에서 숨길찾다'의 시(1) (1) | 202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