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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월호의 시(1)

by 김창집1 2026. 1. 12.

 

♧ 가장 좋은 詩는 없다 – 홍해리

 

아직

쓰여지지 않았으므로

 

언제

쓰여질지도 모르므로

 

누구도

쓰지 못할 것이므로

 

끝끝내

쓰여지지 않을 것이므로.

 

 

 

♧ 어둡고 환한 시간들 - 강동수

 

내가 읽어 내리던 환하고 어둡던 문장을 접어

책갈피에 끼워 넣는다

언제 다시 깨어나 나를 일으켜 세울지

알 수 없는 저녁

어둠이 밀려온 건너편 아파트에 아직 불 밝히지 못한 창문들은

맞추지 못한 퍼즐처럼

상처가 되어 벽을 장식하고

나는 다시 책장에서 또 다른 문장을 끄집어낸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희미한 낱말들이

나를 이끌고 날아오른다

기억 저편에 있었던 남해의 격렬비열도를 지나

물길을 거슬러 오르던 푸르고 푸른 바다

두 개의 섬 백도에 닿는다

하얀 국화 한 송이 던졌던 눈물의 섬을 지나

추자도, 비금도를 지나면

다시 망망대해

바다는 잔물결을 그리며 빠르게 달려간다

어느 해안에 닿으면 흰 포말로 부서지며

바다도 한생을 마감하는가

 

아직 다 읽지 못한 문장처럼

가 보지 못한 곳의 해안가 어느 곳에

파도는 아직 살아 마지막 숨을 쉬고

소멸의 시간이 다가오면 하나, 둘 방파제에

모여드는 군상들

낚싯대에 밤에 다녀간 파도의 안부를 묻고

바다를 건져 올린다

 

어둡고 환한 시간이 지나가며

하루를 마감하면

어둠이 내려와 책의 한 페이지를 덮는다

 

 

 

♧ 우산 – 김정식

 

전철 플랫폼에서 그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 의자에

휘어진 지팡이가 기대어 있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여보게 양반, 정동진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여기 전철에선 갈 수 없어요. 정동진은…

 

여보게 젊은이

길은 다들 통한다는데

알려 주시오

 

나는 말끝을 흐렸다

정동진은…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가 말했다

바다를 보고 싶소

등대가 있는

푸른 바다를 보고 싶소

 

파도소리 들리는

갈매기 나는

 

그의 어깨엔 축축한 빗물이 고여 있었다

 

우린 빈 의자에 나란히 앉아

레일을 바라보며

하나의 우산을 쓰고 있었다

 

 

 

♧ 손님 – 도경희

 

주남 저수지에

시베리아흰두루미 한 마리 찾아오셨다

한쪽 다리가 잘린 채

 

긴 여정 속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몸의 균형을 잡기도 어려운데

고개 숙이고 물을 먹는 모습이

자꾸 눈에 젖었다

 

그 몸으로 살아 내겠다고 스스로 날아올라

이승의 행로에 그림을 놓는다

생 혈이 삐죽거리는 마음으로

 

아가,

바람을 다 안으려 하지 마라

구름을 다 입으려 하지 마라

 

골수까지 파고드는 슬픔의 힘으로

큰 날개 펼쳐 바람을 가르는 단정학

하늘에 붉은 무늬를 뜨며

백양들 쪽으로 날아간다

 

 

 

♧ 공원에서 – 박용운

 

빗살 같은 울음이

침묵을 삼키고

푸른 잔디에 수를 놓는다

 

본디의 운명이었던가

 

어쩌다 슬픔을 토하려고

수풀에 숨어들면

헤드는 예리한 초점을 휘둘러

다시 내몰리는 생

 

순종만 알고 반항은 배우지 못했다,

 

컵에 들어가는 우퍼 같은 울음을

즐겨하는 마니아

당신은 나에게 단 한 번이라도

미안하다고 위로한 적 있었나,

 

다음 세대의 환생은

붉은 쇳물 두들기는 해머가 어떨까

 

웃음소리 박수 소리 나이스샷!

피멍은 들어도 피를 흘리지 못하고

힘껏 두들겨 맞으며 살아가는 생

 

태어나 맨 처음 울음부터 배워서일까?

 

선들한 파크 바람은 다정한데

영혼까지 울어야 하는 매정함

멈추지 않는 목탁 소리의 여정은

편초鞭鞘 같은 내몰림의 아우성에

 

잔디에 굴러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월간 『우리詩』 2026 1월호(통권 제45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