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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2025 겨울호의 시(1)

by 김창집1 2026. 1. 11.

 

♧ 어가라 – 강봉수

 

셔, 셔어

있수과

싯광

오래된 이름

이녁을 불러봅니다

 

어디 있수과

불러도 대답 없는 님아

알아구리 털어지게 불러도 오지 않는 님아

궤 속옵에 갇힙디강

돌 아래 묻힙디강

물이 막암수과

삼팔선이 막암수과

영도 정도 못 ᄒᆞᆯ 처지라면

나이디 셔

ᄇᆞ롬에 띄왕 보내기만 ᄒᆞ여도

어가라 ᄃᆞᆯ려갈건디

 

 

 

♧ 압(壓) - 김경훈

 

압권이든

압도적이든

 

단 한 번이라도

이렇게 살았는지

 

단 한 편만이라도

이런 시를 썼는지

 

고만고만한

키재기 속에서

 

 

 

♧ 마음이 가는 곳 – 김광렬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

마음은 온통 등 뒤쪽에 있고

나뭇가지에 걸린 채

사정없이 바람에 부대끼는

가오리연처럼 온종일 나는

너의 생각에 걸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곤 했다

 

 

 

♧ 눈빛 - 김대용

 

1. 이른 봄날 목마른 기억밖에 없던 순례길

미소만 지니고 이제 필요 없는 말들 버리고

이제 다시 손이 가지 않을 것 다 버리고

얻을 것 잃을 것도 없이 세월에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줄지어 서서 그냥 길 따라간다

앞서가려 하는 사람이 없어 일정한 보폭으로

하나 둘 새아리며 가다 숫자를 잃으면 다시 새면서

무모했던 한 청춘을 떠올린다 아무 일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누가 붙잡아주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던 내일을 생각해보지 않던

무엇을 그리워하긴 했는데

 

2. 낙엽처럼 새들은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날아가는

광장 구석 정원 네잎클로버 잎 공들여 엽서에 바르고

맑은 이슬로 운동화 적시던 발걸음 덮인 잔디밭

은행나무 그늘 속 빨간 우체통 우체국

공들인 음악 신청 엽서들 속 철없는 참새 떼들이

옹기종기 모여 누가 먼저 날아오르나

 

3. 가을 엽서는 노래를 타고 겨울 바닷가로 흘러가고

어둠 속 치자꽃 같은 눈 내려 세상이 잠들면

날 선 칼을 든 복면의 암살자 발자국 덮고

밤새 소리없이 눈 내린 골목 아침 첫 발자국처럼

선명히 당신의 마음에 상흔을 남기고

당신은 아직도 창밖을 보고 기다리고

아직도 무심하듯 목멘 기다림이 눈물 한꺼번에

동백지듯 뚝뚝 떨어지고 말겠지

 

4. 깊은 바다에 잠긴 젊은 어느 여름날

한때 튼튼한 어깨 뿐이었던 아침 항구에 돌아와

묵묵히 땀 흘리다 피우던 빨간 박스의 담배

어쩌면 치렁이던 머리를 짧게 가른 그대는

어디쯤에서 다시 뒤돌아 나를 쳐다 볼까

외롭고 슬픈 영혼들이 헤매던 항구

안개 짙은 가로등 아래 눈길 마주친 그대

그 입술에 날리던 담배 연기 재가 되어버린

비릿내 익숙한 항구 나도 고향이 바닷가인데

 

 

 

♧ 사랑하거나 사랑받거나 둘 중 하나 - 김병심

 

남자에게 홀려 잠을 못 자고 자정마다 혼자 오르는 오름

저 늙은 털북숭이들은 누운척누운척 눕지도 않아요

발바닥에 붙은 말똥, 물내 나는 똥을 오름에 털어내며

똥 밟았네 똥 밟았어!

신경질도 안 내요

어두운 사방에 뿌려질 달빛을 찾으려고

하늘 가까이 다가가 고함을 치거나

남자를 불러내고 싶어 이름을 부르지도 않아요

내 눈을 돌고 있는 다크서클다크서클

 

오름 위에 내 머리카락을 심을까 봐요

하안 것들 속에 혼이 빠져나간 광년이처럼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슬퍼할지도

모르긴 몰라도 혼기 꽉 찬 처녀 귀신은 내 맘 알 걸요

어서 떠나라, 남자가 있는 곳으로

등을 떠밀어주세요

나의 고백을 들어준 허공은 반사하며 달을 내밀겠죠

고백은 재가 되어 고스란히 오름에 묻혀

나 잡아봐라 나 잡아봐

머리카락 쭈뼛 선 남자의 발목을 잡을지도 몰라요

 

남자와 우연히 오르던 달밤의 백 년 묵은 이야기처럼

백 년 후의 남자와 나에게 달빛 하나로 태어나 안부를 물을지도

부슬비 내리는 오름 위에서

도대체 나는 뭘 상상하는지

멍든 하늘이 나와 눈이 마주쳐도 반짝이질 않네요

발 헛디딜까 봐

털북숭이들은 모가지가 잡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아요

 

 

                               *계간 『제주작가』 2025년 겨울(통권 제91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