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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의 시(2)

by 김창집1 2026. 1. 19.

 

♧ 지문 인식

 

내가 아닌 적 없는데

나를 모른다고요?

 

나를 모르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아무리 눌러 보아도

나를 읽지 못해요

 

제발 나를 읽어요

침 발라 읽어 봐요

 

오른손 엄지와 검지

흐릿해진 손금들

 

하루를 통과할 때마다

내가 잠깐 사라져요

 

 

 

♧ 핸드 프린팅

 

겁먹은 적 많았지

나를 뒤집어 보는 일

 

가금은 뛰쳐나갔다 되돌아온 용기에게

 

바람은 낄낄거렸지

아무 일도 없는 듯

 

악수 한번 못해 본 왼손을 내려놓자

내 안을 빠져나간 빗살무늬 지문들

 

절반을 살아온 길이

부끄럽게 찍히고

 

언제쯤 빈손이 되어 세상을 배우게 될까

몸에서 가장 정직한 바닥과 바닥의 마음

 

조금 더 다정해질 때까지

나를 꼬옥 눌러 본다

 

 

 

♧ 당신도 얼룩말입니까

 

마지막 남은 잎 그마저도 사족이라

초겨울 야생의 결기 뼈마디가 굵었을

 

담쟁이 오래된 문답

흰 벽처럼 듣습니다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온 시간입니까

뒤엉킨 하늘 아래 멈춰 선 노래입니까

 

벽과 벽 기대고 사는

숨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산다는 건 목숨 건 일입니다

잡은 손 마디마디 핏줄 선 사랑입니다

 

당신도 말발굽 소리

들었으면 합니다

 

 

 

♧ 잠깐이라는 산책

 

하루의 시간을 오려

하늘 한 번 보는 일

 

당신이 재촉하는 겨울 문턱을 넘다가

잠깐은 어디까진가 멈추고 선 날이다

 

기차를 기다릴 때

밥물이 끓고 있을 때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

 

사라진 간이역처럼

먼 데서 오는 것들*

 

한눈팔기 좋아하고 제멋대로 꿈을 꾼다

돌아와 생각하면 놓치는 일이 태반인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그곳으로 가 보는 일

 

모니터에 박혀 있는 눈동자는 두고 간다

누군가 다녀가는 잠깐이라는 산책에선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

그마저도 소름이다

 

---

*홍임정의 소설 제목을 인용.

 

 

 

♧ 감쪽같이

 

당신을 썼다 지운다

옆에 선 나도 지운다

 

감쪽같다는 말은

놓아 버린 사랑 같은 거

 

편지를

모두 태운 날

 

사라지던

나처럼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 (걷는사람,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