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문 인식
내가 아닌 적 없는데
나를 모른다고요?
나를 모르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아무리 눌러 보아도
나를 읽지 못해요
제발 나를 읽어요
침 발라 읽어 봐요
오른손 엄지와 검지
흐릿해진 손금들
하루를 통과할 때마다
내가 잠깐 사라져요

♧ 핸드 프린팅
겁먹은 적 많았지
나를 뒤집어 보는 일
가금은 뛰쳐나갔다 되돌아온 용기에게
바람은 낄낄거렸지
아무 일도 없는 듯
악수 한번 못해 본 왼손을 내려놓자
내 안을 빠져나간 빗살무늬 지문들
절반을 살아온 길이
부끄럽게 찍히고
언제쯤 빈손이 되어 세상을 배우게 될까
몸에서 가장 정직한 바닥과 바닥의 마음
조금 더 다정해질 때까지
나를 꼬옥 눌러 본다

♧ 당신도 얼룩말입니까
마지막 남은 잎 그마저도 사족이라
초겨울 야생의 결기 뼈마디가 굵었을
담쟁이 오래된 문답
흰 벽처럼 듣습니다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온 시간입니까
뒤엉킨 하늘 아래 멈춰 선 노래입니까
벽과 벽 기대고 사는
숨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산다는 건 목숨 건 일입니다
잡은 손 마디마디 핏줄 선 사랑입니다
당신도 말발굽 소리
들었으면 합니다

♧ 잠깐이라는 산책
하루의 시간을 오려
하늘 한 번 보는 일
당신이 재촉하는 겨울 문턱을 넘다가
잠깐은 어디까진가 멈추고 선 날이다
기차를 기다릴 때
밥물이 끓고 있을 때
아직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를 때
사라진 간이역처럼
먼 데서 오는 것들*
한눈팔기 좋아하고 제멋대로 꿈을 꾼다
돌아와 생각하면 놓치는 일이 태반인
아무도 붙들 수 없는 그곳으로 가 보는 일
모니터에 박혀 있는 눈동자는 두고 간다
누군가 다녀가는 잠깐이라는 산책에선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
그마저도 소름이다
---
*홍임정의 소설 제목을 인용.

♧ 감쪽같이
당신을 썼다 지운다
옆에 선 나도 지운다
감쪽같다는 말은
놓아 버린 사랑 같은 거
편지를
모두 태운 날
사라지던
나처럼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 (걷는사람,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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