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의 시(6)

by 김창집1 2026. 1. 22.

 

♧ 공존

 

막대기 가운데를

두 손으로 잡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맞춥니다

왼쪽에

파랑색 칠하듯

빨강색도 칠합니다

 

막대기 가운데를 톱으로 자릅니다

파랑색의 좌•우처럼

빨강색도 나뉩니다

나뉘고

다시 나뉘어도

좌•우 함께 삽니다

 

 

 

♧ 철새

 

제비 떠난 자리

기러기 날아왔다

어찌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날았을까

뼛속을

비우는 아픔

날개 속에 묻어두고

 

여의도 철새들은

뼛속까지 기름이 껴

뭘 보고 날아가나 아, 저 뒤뚱거림

미안타

흙탕물 튀겨도

맑은 하늘 날아라

 

 

 

♧ 오죽하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외려 그걸 즐기나 보다

네 실수가

내 즐거움

픽 웃으며 고소해하는

돈 주며

야구장 간다

안 되는 걸 보는 재미

 

 

 

♧ 비누와 치약

 

5월 감나무 앞에서

저 얼굴 부끄럽다

권력은 검은 구름

재력은 밤 소나기

뻔뻔함

다 씻고 야윈

비누 잡고 손 모으다

 

잠깐 피고 지는

화려한 작약 앞에

천 년 살 듯 가벼운

악취 나는 입을 닦는

돌 돌 짜

다 마른 치약

그런 시 쓰고 싶다

 

 

 

♧ 겨울 구절초

 

눈 올 무렵 숲 그늘에

수줍게 진 구절초여

보는 이 없어도 피어

마른 꽃이 되었구나

꽃들아

수고 많았다

내가 미리 보러 올 걸

 

살며시 향을 맡으면

가까이 다가와서

보는 이 없어도 피는 꽃이

세상 어디 너뿐이라

귓가에

내려놓고선

바람 따라

가는 꽃이여

 

 

         *고성기 여섯 번째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