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존
막대기 가운데를
두 손으로 잡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맞춥니다
왼쪽에
파랑색 칠하듯
빨강색도 칠합니다
막대기 가운데를 톱으로 자릅니다
파랑색의 좌•우처럼
빨강색도 나뉩니다
나뉘고
다시 나뉘어도
좌•우 함께 삽니다

♧ 철새
제비 떠난 자리
기러기 날아왔다
어찌 그 먼 길을 쉬지 않고 날았을까
뼛속을
비우는 아픔
날개 속에 묻어두고
여의도 철새들은
뼛속까지 기름이 껴
뭘 보고 날아가나 아, 저 뒤뚱거림
미안타
흙탕물 튀겨도
맑은 하늘 날아라

♧ 오죽하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외려 그걸 즐기나 보다
네 실수가
내 즐거움
픽 웃으며 고소해하는
돈 주며
야구장 간다
안 되는 걸 보는 재미

♧ 비누와 치약
5월 감나무 앞에서
저 얼굴 부끄럽다
권력은 검은 구름
재력은 밤 소나기
뻔뻔함
다 씻고 야윈
비누 잡고 손 모으다
잠깐 피고 지는
화려한 작약 앞에
천 년 살 듯 가벼운
악취 나는 입을 닦는
돌 돌 짜
다 마른 치약
그런 시 쓰고 싶다

♧ 겨울 구절초
눈 올 무렵 숲 그늘에
수줍게 진 구절초여
보는 이 없어도 피어
마른 꽃이 되었구나
꽃들아
수고 많았다
내가 미리 보러 올 걸
살며시 향을 맡으면
가까이 다가와서
보는 이 없어도 피는 꽃이
세상 어디 너뿐이라
귓가에
내려놓고선
바람 따라
가는 꽃이여
*고성기 여섯 번째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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