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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7)

by 김창집1 2026. 1. 26.

 

♧ 감귤나무

 

오일장에서 사다 심은 감귤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심을 때와 큰 차이가 없어 토양이 맞지 않은가 싶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정할 때가 왔다

 

이리 생각하며 음지에 심어서 그런가 하고

양지로 옮겨 심었는데 싹이 나고

몇 개의 꽃이 잎사귀 사이로 피어

제 곳에 심었다 싶었다

 

어느 날 비가 계속 내리다 그치더니

이제는 폭염이 계속되어 나무가 축 늘어져

이파리가 말라 죽어가고

뿌리가 겨우 자기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 살려나 보다 뽑아 버리려는데

사 온 사람이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에 기대를 거절할 수도 없어

기적처럼 살아난다면 얼마나 축복일까만?

 

 

 

♧ 코로나와의 사투

 

밀폐된 곳 갑옷 같은 방호복을 입고 숨이

막히는 생사의 전쟁터에서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초조한 눈빛들이 있어 세상은

외롭지가 않습니다

 

내가 쓰러지는 날까지 멈추지 않으리

밤에 눈을 붙이지 못하고 깊어가는 밤을 지기다가

끝내 숨을 거두는 환자를 보면서

천사들은 지치고 버티기가 힘들어 합니다

 

도시가 멈추고

퇴근길에 거리로 나오던 넉넉함이 사라진 거리

네온사인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어둠이

공허 속에서 축 처진 어깨만

깊은 시름에 부서져 내립니다

 

이웃과 친구들 주고받던 한잔 술이 2년째

식어버린 가슴을 꽁꽁 얼게 만들고

아끼던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동짓달 긴 밤을

하얗게 지새울 밤은 언제쯤 올까요?

 

 

 

♧ 생과 사

 

  이 몸이 구성하는 것도 지수화풍 네 가지 원소가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 몸은 병을 받게 되는 근본이요 마음은 병으로 아픔을 느끼는 주인이요 우리 몸의 병은 사대(지수화풍)가 조

화를 잃은 데서 생긴다

 

  이 몸은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뜬구름과 같고 번개와 같고 꿈과 같다. 안에는 사지와 액체가 있고 밖에

는 흙과 나무와 물이 있다

 

  흔들리는 마음은 많이 구하려는 데서 생기고 근심과 걱정은 부족한 데서 생긴다

  죽음이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있었던 인연이 끝난 것이요. 다음 새로운 조건이 구성되면 새로움으로 태어

나 한없이 이어짐을 말한다.

 

 

 

♧ 보리심菩提心

 

번뇌가 번뇌인 줄 알면 그것이 보리이고

번뇌인 줄 아는 것은 자기 망상임을 깨닫는 것

꿈에서 깨는 것과 같습니다

 

꿈을 깨면 그것이 헛것이고

집착할 바가 못 되는 줄 저절로 알게 되며

그러면 번뇌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이 보리입니다

 

우리들은 어리석음을 당하기도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삭여가는

번뇌가 잠든 고요한 바다를 보리라고 합니다

 

 

 

♧ 공空

 

나라는 존재 역시 고정된 실체 없이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할 뿐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이 멸하면 소멸된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입는 옷은 단 한 벌이다

그런데 조금 해어졌을 때는 짜깁기를 잘하여

새 옷처럼 입을 수가 있고 적당히 닳아졌을 때는

다른 천을 대고 기워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해져 수선이 어렵게 됐을 때는

당연히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죽음의 소식 다가옴을 느끼게 되면

새 옷에 대한 준비를 서서히 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바라는 옷을 입기 위해서는 평소에 선행을 하고

분별심을 놓고 어떤 옷을 입겠다는 원을 세워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올 때 빈 몸으로 왔는데 갈 때도 빈 몸이다

이 공의 이치를 안다면 서로 돕고 보시를 하며

사는 것이 우리 삶의 이치인 것이다

월 움켜쥐고 놓지 못해 하는가?

 

 

            *강연익 세 번째 시집 『노을을 붙잡고』 (그림과 책,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