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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의 시(4)

by 김창집1 2026. 1. 28.

 

♧ 무너지는 사내들

 

정상이 바로 저긴데

바라다보다,

 

올려다보다

무너지는 사내들.

 

젖은 꽃 밟고 넘어져

미끄러져 내리다,

 

만년설 속에 묻혀

얼음미라가 되는 사내들.

 

 

 

♧ 세상에 가장 단 것은 죄의 맛이다

 

죄짓는 재미

얼마나 달면

 

날이 날마다

신문 방송마다 그리 요란할까

 

모자 눌러 쓰고 고개 푹 숙인

뻔뻔한 얼굴들이 줄을 잇는다

 

'죄지은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다.'는데

 

왜 죄는 어두워 보이지 않는가?

 

 

 

♧ 치자꽃 시들다

 

푸르도록 시리던 내 영혼도

어느 날 홀연히

시들어 버렸다

 

누렇게 변한

초라한 몰골

가지 끝에서 떨어질 일만 남았다

 

여름날은 이렇게 가고 마는가

 

 

 

♧ 기청제祈晴祭

 

살아 있어 사람이니

눈물 젖은 미소가 어찌 없으라

 

내가 고요하지 못하니

하늘이 맑고

호수가 잔잔할 리 있겠는가

 

머릿속이 흑과 백,

때로는 까매서 하나도 보이지 않고

어느 땐 하얘서 아무것도 없는 듯

 

텅 비어 있는 세상이라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허망함이여

 

하늘이 개고 세상이 맑기를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늘이여 하늘이여 비노니!

 

 

 

♧ 전야

 

내리 두 달 물폭탄을 퍼붓다

 

조용하니 더 무섭다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저 푸른 하늘이.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놀북,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