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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수풀문학' 제20호의 시(1)

by 김창집1 2026. 1. 27.

 

        [초대시]

 

♧ 잘못 없는 꿈 – 고영숙

 

오래오래 참으면 나도 눈부셔질까요

 

잠깐씩 깨어나

베개에 묻은 흙을 털면

나의 바탕색은 남향이었을까요

 

꽃나무 아래에서 죽은 인형은

차가운 밤이 되고

우린 매일 좋은 꿈을 나눠 먹어요

실패한 꿈은 세상에 없는 기원이 되고

반려식물처럼 길어지는 머리카락

 

아직 꿈에 봉인된 인형은

나쁜 이야기가 아닌

오히려 선몽이라고

 

아무 잘못 없는 꿈은

나에게 말하지만

 

식어가는 잠은 말수가 적어요

 

국화꽃을 던지면 말린 꿈은

생생한 잎맥이 돋아나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면

깊은 잠을 못 잔다고

 

남은 꿈을 심는 뿌리 없는 사람들

 

 

 

♧ 고추 정강이 – 김세홍

 

  바깥채 통로 곁방에서 어머니는 일찍 주무신다. 눅눅한 방안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여름이 잠복해 있었나 보다. 베 홑이불 바깥으로 비어져 나온 어머니 정강이는 여름내 바싹 마른 고추 같았다.

  아버지도 홀로 방 안에 누워 계실 적에는 저렇게 다리 한쪽을 세워서 무료함을 드러냈다. 간경화로 복수가 가득 차서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빼러 병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그때 처마 아래에는 어머니가 딴 고추가 남은 생명의 징표랄지 푸릇한 기운을 홧홧한 허공에 내주고 있었다.

 

  나는 고추밭에 앉았다고 엉덩이가 빨개진 고추잠자리라 노래하던 아들의 옛 동시를 떠올렸다. 날마다 호흡수가 늘어나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의 정강이에서 잘 말라 가는 고추가 겹쳐 보였다.

여름 땡볕이 재 사그라들지 않던 그즈음, 그늘에서 고추가 빨갛게 마르자, 아버지는 일평생 가득 담았던 들숨을 끌어모아 하늘에 고하듯 크게 입을 벌렸다.

  자궁을 빠져나왔던 어린 몸이 파들거리는 날숨으로 큰 몸을 건너갔다. 허공을 돌던 고추잠자리가 앉았던 고추나무가 부르르 떨쳤다. 아버지는 잘 마른 고추가 되었다.

 

  매년 아버지는 고추잠자리로 와서 어머니 처마 밑에서 바삭바삭한 고추가 되었다. 당신은 기일에 맞추어 떠났고, 물김치를 잘 담그는 동생은 정강이들을 절구에 담아, 물집이 잡히도록 오래 빻았다. 하루를 기다려 어머니가 국물 반 숟가락을 떠서 입맛을 다시면 안색이 환해지는 처서가 오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가 눕는 방 처마 아래에 와서 보름간 살다가 갔다. 볕이 과랑과랑한 형편이나 찾은 비 날씨를 괘념치 아니하고 아버지 정강이는 꼭 보름 동안 먹을 만한 물김치를 남겨 놓고 가신다.

 

 

 

♧ 어마 넋들라 – 김신자

 

  놀라서 넋 났구나

  우리 아기 어마 넉들라

 

  일상은 원시 부족 언어처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몸짓으로도 불편함은 없었다 은빛 갈치처럼 싱싱하던 말들이 절부암을 보이며 오래도록 수장되어 있었다 푸른 혀를 잘라 어둠에 묻던 날 나는 말을 잃었다 망각은 기억 세포를 일깨우며 바다에 서 있었다 어마 넉들라 어마 넉들라 주문이 분주한 중에도 용수리 포구에는 배가 드나들더라 그러니 기꺼이 머리를 기울여 중심을 잡고 침묵을 돌보았지 내 머리가 하얗게 창백해질 때까지, 이 마법 같은 의식이 하얗게 물들 때까지 어마 넉들라 어마 넉들라 머리에 물 적시며 푸푸 내 얼굴 위로 환하게 휘몰아치던 그해 겨울의 맛

 

  그때는 알지 못했다

  허덕였던 기원을

 

 

 

♧ 화재주의보 7 – 임태진

 

출동벨이 울리면 짧은 기도를 한다

큰불이 아니기를 자체 진화되기를

단 한 명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기를

 

출동로가 막히면 또다시 기도한다

모세의 기적이 폭풍처럼 일어나길

소방차 답답한 가슴

봇물처럼 터지기를

 

한발 늦은 화재 현장 한발 늦은 인명구조

“사망자 1명 발생, 질식 소사 추정됨”

숨 가쁜 무전기 소리

허공에서 역류한다

 

“나 죽거든 절대로 화장하지 말라”는

어느 영웅 소방관 그 소원이 타는 밤

최성기 내 그리움은

진화되지 않는다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 2025 제2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