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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창화 시집 '섬의 아우성'의 시(1)

by 김창집1 2026. 1. 29.

 

   [작가의 말]

 

♧ 이 가을에도

 

마당의 감나무, 봄바람에

연둣빛 입새 하늘거리던 날이 엊그제던데

우듬지에 만추의 단풍진 이파리 몇 잎

달랑달랑 걸어놓고

하얀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휘감기는 연륜, 세월의 계단을 오르다 보니

푸르렀던 청충의 내 어깨 위로도 어느덧

가을이 접어들었고

쓸쓸한 계절을 노래하는 이 시점

 

우듬지 꼭대기에 달린 까치밥 마냥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내 안을 단풍진 잎처럼

곱게 물들이는 벗들이 있다

 

내 안의 벗들

시공간을 넘나들며 출렁거릴 때

이렇다 할 아무런 동요도 없이

끝없이 끝도 없이 번지는 벗들과의 사랑

 

미흡하지만 강심장으로

드디어 일굴 내미는 나의 벗들

 

 

 

 봄이 오는 강가에서

 

인적 뜸한 입춘 넘긴

탄천의 강 둔치

하안 눈 위

바람 매서운 동토는

정들 곳 하나 없는 차가운 천지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오직 하얀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듯한

내가 끌고 온 발자국들만이

미련처럼 나를 따르며

눈발 날리는 동면의 대지 위에

인적의 흔적을 남긴다.

 

봄은 아직 저 먼 곳에 있다지만

그러나 내 마음엔

벌써 봄의 떨림을 느끼고 있다.

 

 

 

♧ 손으로 만지는 봄

 

입춘 넘겨 봄소식 기대하지만

앙금처럼 가라앉은

마지막 마디의 겨울

 

도심 산책의 밤

순간 호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고

그 속에 보온된

내 체온을 만지작거린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피는 따사함이

봄 햇살처럼 시린 손에 닿음에

생각은 한결

개나리 꽃그늘 흐드러진

봄날을 닮아가네.

 

 

 

♧ 4월의 숲길

 

문명의 공간을 떠나 무성한 숲길

혼자서 수도승처럼

호젓이 걸어갈 때

잎사귀 사이 흐르는 바람은

연인처럼 살랑살랑

나의 고단한 생각들을 달랜다.

푸름 속에 눈이 맑아지니

영혼이 맑아지고

가슴엔 연둣빛 떡잎이

다정처럼

돋아나며 마침내

사색으로 다다르는 초록의 경지.

 

 

 

♧ 5월을 보내며

 

곱디고운 얼굴로 찾아와 그간

정답게 지내다

화사한 자취만 남기고 가버린,

 

마음속 깊게 간직한 연인이

안녕이란 한마디 말도 없이

훌훌 떠나버린 것과도 같아

진솔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 같은

섭섭한 마음이 연둣빛에 맴돌고

 

나는 계절의 여울목에 서서

황홀하리만치

진 녹으로 물들어가는

연록의 푸른 정원에서

진 녹의 여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김창화 제5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