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움의 언어 – 강순복
마음은
그리움의 언어로 말합니다.
바람에 나부끼고,
떨어지는 잎새 하나에도
사랑의 소리에
조용히 움직입니다.
그리움은
자연의 품에서 다시 피어나고,
말없이 위로가 됩니다.
비자란, 노란 꽃송이,
수줍은 듯 방긋 인사하듯
나를 바라봅니다.
얼굴 편 꽃잎 위로,
가늘게 피진 안 속의 핏줄들.
이 꽃도 무슨 사연이 있길래
소녀의 얼굴처럼 그렇게 수줍을까요.
그 앞에 선 나는
가슴 한켠 아린 마음이 들었습니다.
삶 속에서
힘든 여정에 닿으면서도
부모님과 함께 걸어온 길 위엔
미처 몰랐던 따뜻함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빛,
어머니의 손길,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을 살아가는 과정의 마침표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억은 잊히지 않고
마음 깊은 곳,
늘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속삭임,
꽃잎이 건네는 미소,
그 모든 순간이
내 발끝에 머문 기억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따스한 빛이 됩니다.

♧ 이월의 행복 – 김동인
이월의 끝자락
밤사이 실내정원에 뿌려진
짙은 천리향 향기가 흠뻑 취하게 한다
향기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짙은 향기가 위로와 기쁨일 뿐이다
오랜 추위를 묵묵히 이겨낸
노고에 대한 뜻밖의 선물이다
마당에 활짝 핀 수선화도
버텨낸 겨울 만큼 향기가 그윽하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 수북하다.

♧ 무화과 – 김영숙
매미소리 그늘 안에
감춰 두었던
식탁 위에 무화과
꽃이 없는 꽃이라지만
피지 못한, 여물지 못한
꽃
기다리고 있다
비밀처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화려하지 않은
백만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 호박잎 당신 – 김옥순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호박잎 부침개는
내 속도 모르고
지글지글 잘 익었습니다
밀가루에 빡빡 문지른 거친 잎사귀
채수물 속에서
내 속도 모르고
걸쭉하게 잘 끓었습니다
님은 떠나셨는데
부침개가 호박잎국이 습관처럼
식탁 위에 덩그러니
주인 찾아 마중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많이 힘든가 봅니다
잠겨 있는 내 마음을 열어주시려
꿈속에 급히 와주신 호박잎 당신
아! 그리운 당신

♧ 돌아가는 중이다 – 김정수
효험이 남다르다던
안골의 석상
수많은 기원의 숨결을
품은 채
끝내 한마디도 없이
돌아가는 중이다
손길에 닳아
오뚝을 잃은 코
수없이 어루만진 귀는
밤하늘처럼 반들거리지만
이제 그 귀는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는 중이다
가부좌한 손바닥 위,
동전 몇 닢
풀리지 못한 사연의 무게만큼
무덤덤하게 억누르고
바람은 흩날리며 지나가고
서러움은 땅으로 스며든다
마침내 모든 흔적이 사라져
석상은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고
돌도 흙이 되고
흙도 풀잎이 되어
기도의 흐느낌마저
고요 속으로 스며든다
우리도 언젠가
그 길 위에 서서
말없이 그 길을 따라
돌아가야만 한다.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2025년 제1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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