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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의 시(9)

by 김창집1 2026. 2. 5.

 

♧ 그날

 

그림자가 나를 떠났다

나도 떠났다

 

한줌의 재가 된 몸체

땅속으로 스미고 나니

 

땅이 빛을 발한다

내 그림자

하늘을 딛고 섰다

 

 

 

♧ 나 다시 필 거야

 

가뭄과 갈바람에 시달리던

언덕배기 새비낭* 한 그루

늦가을 어느 나

모질던 목숨 기어이 놓는다

 

꿈길인 듯 가는 길

숲이 낙엽 떨구며 통곡하는데

그림자 없는 놀빛 새비낭 영혼

무의식의 언어로 말한다

- 울지 마! 나 다시 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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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낭 : ‘찔레나무’의 제주어.

 

 

 

♧ 굴메

 

ᄒᆞᆨ교 갈 때 ᄒᆞᆼ글ᄒᆞᆼ글 ᄄᆞ라와요

집이 갈 때 졸락졸락 ᄄᆞ라와요

나가 푸더지민 ᄀᆞᇀ이 푸더지곡

나가 ᄌᆞᆷ을 자민 ᄒᆞᆫ디 ᄌᆞᆷ을 자요

ᄐᆞᆯ락ᄐᆞᆯ락 엄마영 시장 가는 질

굴메도 엄마 손 꼬옥 심엉 가요

굴메는 날 잃어불어지카부덴

나 가는 딘 아무디나 ᄄᆞ라뎅겨요

 

 

 

♧ 우리 집 돌울담

 

시린 등으로 모진 풍파 견뎠네

긴 세월

멧비둘기 끅끅 앉았다 가고

까마귀 검은 노래 부르다 갔네

 

할아버지가 쌓았다니 어언 백 살

키는 점점 작아져 가고

세월이 굽은 등 어루만져 주는데

 

약속대로 봄이 또 찾아왔네

익숙한 몸짓으로

마당 가득 햇살을 가두어 놓네

담벼락에 기대어 졸고 있던 아기민들레

화들짝

초롱한 첫 눈을 뜨네

 

 

 

♧ 춘몽春夢

 

빨리 일어나라

하늘에서 내려오신 어머니

얼른 말하고 가신 후

저쪽 방에서

초봄이 벽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

뼈가 되고 살이 되는 하루를

자근자근 뜯어먹는 일

 

나는 군소같이 언제나 더디다

해가 벌써 외길로 중천을 넘어선다

잡아당길수록 더 서쪽으로 간다

사방을 다 가진 하늘도

손이 없는 듯

어쩔 도리가 없다

 

햇살이 뭐라 했을까

마당 구석 개나리

하늬바람에 북북 찢겨진 상처에서

배곯은 입인가 꽃 하나 펼쳤다

그래 나도 너처럼 입 크게 벌려

서 하늘에 뜬 꿈이나 먹어야겠다

 

 

                *양전형 시집 『나 다시 필 거야』 (한그루,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