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적인 슬픔의 안부
달라붙은 밥알을 버릇처럼 떼서 먹듯
몸에 붙은 울음을 습관처럼 잘라 먹다가
아직도 이별의 문법 고쳐 쓰지 못하고
사소한 오늘과 나를 무엇이라 번역할까
무너지지 않으려고 계속 쓸 수 있을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반성문만 쓰는 나
깨어진 기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아
시가 없다 사랑도 없다 서로가 멀어질 때
슬픔과 슬픔이었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 낭만 보존의 법칙
다 낡아 해진 시간을 버리지 못하겠다
기어코 계절을 따라 외출했던 구두 한 켤레
오래된 굽을 버리고 저만 혼자 돌아왔다
신발장 열어 보면 구겨지고 흐린 날들
절뚝이며 걸어오는 내 안의 발자국 소리
한 줄도 지우지 못한다 어제의 귀가처럼

♧ 저녁의 시
전깃줄에 어린 제비들
나란히 앉아 있다
또 한 마리 날아와
착지하는 순간
두 발로
꽉 붙든 허공
걷는 내내
생각했다

♧ 그림자 산책
밤은 왜 낮은 쪽으로 등을 서로 기대는지
속내를 길게 드리운 야자나무 지나서
갈대숲 새들의 언어 외국어로 듣다가
울음이 울음을 덮고 어둠이 어둠을 덮고
갯바위 언저리마다 찬물에 부리를 닦는
저들의 문장 한 줄을 받아쓰지 못한 밤

♧ 오늘의 결심
모두가 시인이라서 시인이 따로 없다는
인디언의 문장처럼 나 다시 태어날까
밤이면 달빛을 찍어 첫 문장을 또 쓰네
가장 오래된 스승은 바위 속에 산다는 말
잘라낸 마음자리에 전사처럼 깨어나길
바위에 계란 치기다, 그런 말도 잊었네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 (걷는사람, 2025)에서
*사진은 요즘 한창인 한림공원의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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