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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산책'의 시(3)

by 김창집1 2026. 2. 6.

 

♧ 사적인 슬픔의 안부

 

달라붙은 밥알을 버릇처럼 떼서 먹듯

몸에 붙은 울음을 습관처럼 잘라 먹다가

아직도 이별의 문법 고쳐 쓰지 못하고

 

사소한 오늘과 나를 무엇이라 번역할까

무너지지 않으려고 계속 쓸 수 있을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반성문만 쓰는 나

 

깨어진 기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아

시가 없다 사랑도 없다 서로가 멀어질 때

슬픔과 슬픔이었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 낭만 보존의 법칙

 

다 낡아 해진 시간을 버리지 못하겠다

기어코 계절을 따라 외출했던 구두 한 켤레

오래된 굽을 버리고 저만 혼자 돌아왔다

 

신발장 열어 보면 구겨지고 흐린 날들

절뚝이며 걸어오는 내 안의 발자국 소리

한 줄도 지우지 못한다 어제의 귀가처럼

 

 

 

♧ 저녁의 시

 

전깃줄에 어린 제비들

나란히 앉아 있다

 

또 한 마리 날아와

착지하는 순간

 

두 발로

꽉 붙든 허공

 

걷는 내내

생각했다

 

 

 

♧ 그림자 산책

 

밤은 왜 낮은 쪽으로 등을 서로 기대는지

속내를 길게 드리운 야자나무 지나서

갈대숲 새들의 언어 외국어로 듣다가

 

울음이 울음을 덮고 어둠이 어둠을 덮고

갯바위 언저리마다 찬물에 부리를 닦는

저들의 문장 한 줄을 받아쓰지 못한 밤

 

 

 

♧ 오늘의 결심

 

모두가 시인이라서 시인이 따로 없다는

인디언의 문장처럼 나 다시 태어날까

밤이면 달빛을 찍어 첫 문장을 또 쓰네

 

가장 오래된 스승은 바위 속에 산다는 말

잘라낸 마음자리에 전사처럼 깨어나길

바위에 계란 치기다, 그런 말도 잊었네

 

 

                             *김진숙 시집 『잠깐이라는 선택』 (걷는사람, 2025)에서

                                          *사진은 요즘 한창인 한림공원의 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