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연 업보
이 자리는 언제나 업보의 순간이면서
새로운 인因을 심는 자리며
이 자리는 또 다른 연緣이 되기도 하고
업業을 맺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인연 업과로 말미암아 내가 참고, 만들고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일 뿐
신이 만들어 낸 것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존재의 법칙은 원인이 있어 환경을 만들고
행위가 있게 되고
결과의 열매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나 자신이 거짓 나인 것을 깨닫는 일
언젠가 사라져 없어질 나를 버리고
인연 업보에 의해 윤회하며 없어지지 않는
나를 찾는 일을 생각해 보자.

♧ 꽃비 내리던 날
활짝 핀 벚꽃이 도로 양쪽을 덮고
천상 세계를 가는 듯 황홀한데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차창에 부딪치는 꽃잎이 한겨울 눈보라 치듯
시야를 막는다
황홀경에 빠져 생각 없이 꽃비에 취해
한참을 달리다가 목적지에 닿자
꽃잎이 가는 길에 비애를 느낀다
어느 날 천지개벽이 되어
우리도 저 꽃비처럼 사라진다면
기약도 없는 꿈 같은 생각에 잠긴다.

♧ 멍멍이 생각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살다가 벗할 수 있는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더니 어머님은 귀여운 노란 복실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사 주셨다
집에 올 때 반겨주는 것은 오직 강아지뿐이었고 그렇게 3년쯤 자라서 도구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학교 갈 때를 제외하곤 항상 같이 친구로 생활하게 되었다
어느 날 밭에 같이 갔다 오다가 자동차에 치여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감고 말았다. 어떻게 할 도리 없이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식구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밥도 먹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장례라도 잘 지내주자고 생각하여 달이 훤히 떴던 날 시체를 가마니에 지고 가서 양지바르고 솔바람 부는 곳을 택해 유택을 마련해주고 명복을 빌며 애도를 표하고 돌아왔다
개는 영리하기도 하고 업을 받는 윤회의 법칙에서는 동물 중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직전에 태어나는 것이 개라고 하였고 개는 사람과는 정이 많이 가는 동물이다. 착한 개는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말을 믿어 본다.

♧ 깨달음이란
고정관념으로 만들어진 온갖 상을 깨트리면
제 딴에는 살려고 하는 짓이 죽는 길이 되는
어리석음이 행복해지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
불행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여러 갈래의 냇물이 흘러 바다로 가면
한 가지 바닷물 맛이 되고
잡철이 용광로를 거치면 순철이 되듯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한정적이고 잘못됨을 안다면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욕망을 닦으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성냄을 닦으면 자비를 배우고
어리석음을 닦으면 지혜로워진다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광명이 그 공간 자체가 빛이 되는 것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

♧ 내 마음속에
물결에 떠내려가다 보면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게 되므로 흐름을 거슬러 밖으로 나와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쉽지가 않으므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구명의 밧줄을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우리는 경계에 부딪칠 때마다 나를 뒤돌아보며 지표 삼아 가슴 깊이 청정한 마음을 찾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 법은 깊은 산속 절에 있는 게 아니며 내가 몸담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부딪치며 살아가는 깊은 마음 속에 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은 슬프고 외롭지만 이만큼 살아온 세월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한도 끝도 없는 욕망 때문에 헛된 생각을 자꾸 비우고 비워 나가면 더 이상 비울 수 없는 자리 그 자리에 오롯이 남은 내 안의 참된 진리가 있게 된다.
*강연익 세 번째 시집 『노을을 붙잡고』 (그림과 책,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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