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이동 우거
예가 제 집인 줄 알고 귀뚜라민 밤낮이 없고
그제는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아오더니
어제는 방아깨비가 베짱이를 데리고 오고
오늘은 버마재비가 한잔하자고 날 찾아왔다.

♧ 詩法
산속으로 들어가는 스님의 발길 끝에
절이 있듯
물을 그리려면 물고기를 찾아야지!
물고기를 잡으려고
나무에 올라갈 일인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쏠 일인가 어디?

♧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죽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살기보다 더 힘들다는데
어쩌자고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는가
죽기 살기로 달려들면
밤인들 어찌 환하지 않겠느나
길은 천지 사방 상하가 따로 없다
죽는 소리 죽는 시늉 하지 말고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데로
가거라, 지금 바로 떠나라
숨 쉬고 있는, 눈을 뜨고 있는 지금,
여기가 극락이라는데
죽자 죽자 하지 마라
섬마섬마 하며 크지 않았더냐
길이 없으니 밤이 얼마나 환하냐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 안개
진부령을 넘으며 너를 만났다
익을 대로 다 익은 농염한 너
감출 것이 많은 여인네처럼
설악산 비단치마 다 펼쳐서
전신을 감고 정신을 잃게 하더니
나를 백일몽 환자로 만들었다
어디 숨어 있다 갑자기 나타나
어느새 두 팔을 잡아 끌고
산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무봉천의無縫天衣가 다 벗겨지고 있었다.

♧ 주부의 힘
주부가 무너지니
집 안과 집안에 바로 서는 게 없다
여기저기 여기 저기 여 기 저 기
바람은 새고 먼지만 쌓이고 있다.
가족이 스러지고
일가 친척들이 사라지고
이웃과 친구들이 멀어지고
사회활동이 허물어지고
드디어 천박한 민주주의
알량한 나라
쥐도 새도 모르는 새
바닥에 떨어져 바닥나고 있다
세상이 불타고 있다.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 (놀북,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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