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능소화가 고개를 들던 날 – 김미옥
저 길을 따라 걸어오시던 엄마
장에서 돌아올 때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좌판에서 내리친 생선 대가리가 많은지 적은지
흩뿌려진 비늘이 문신처럼 박혀있고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한 내음들로 얼룩진 엄마에 대한 잔상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저 길! 따라 걸으며 엄마가 지고 걸었을
삶의 무게에 잠겨본다

♧ 내가 아는 골목 – 김양희
온 가족 을러나와 집줄 가닥 놓던 목
더위와 담뱃잎을 촘촘 엮어 말리던 목
돌담에 척척 빨래도 흉허물이 없던 목
누구네 대문이든 활짝 열려있던 목
겨우 리어카만 드나들어도 넓은 목
베지근 각재기국이 발 끌어당기던 목

♧ 안동네 – 김진숙
미시적 관점으로 본 골목은 달팽이관
한 바퀴 돌고 나온 바람의 세포들이
전봇대 기운 쪽으로 발소리를 깨운다
오래된 음계처럼 쌓아 올린 돌담과
여름의 구름처럼 얽혀있는 전선들과
어머니 무릎 연골처럼 닳아버린 기억들
헐렁한 슬리퍼 끌고 누가 마중 올 것 같은
낮은 지붕 사이로 고층 건물의 긴 그림자
안과 밖 시간을 따라 자꾸 귀가 커진다

♧ 길과 길담 - 김순덕
두샛바람 시월에 꼴 실은 달구지
개나리 피는 삼월 말 탄 신랑
발굽 소리 나이 없는 길과 돌담
두런두런 웃음잔치 새색시 산통에
떡두꺼비 첫 열매 이보게
의정 좋은 신랑 각시 둘째 경사구먼
동백꽃 어느 사월 집 나선 아비는
영혼으로 돌아오고
날길 배유 위에 남매가 노는 소리
은발 날리며 아비 보러 가는 소리
몇 백 년인가 새 시대 골탕으로
숨통을 막을 테니 이별주 한잔 받게
이끼 안은 길담과 날길 두런두런

♧ 소금산* S라인 – 이상언
노꼬메에서 과물로
내리 치달아
용이 되려다
뚝
멈춘 금산
용이 되려고 소나무 등걸이 기어오르다 콩짜개덩굴이 돼버린 비늘
작은 앞치마에 담아
똘
똘
똘
옆으로 심은
소금산
소애못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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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 : 애월읍 남읍리 금산공원 옆 작은 금산.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 2025(제2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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