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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창화 시집 '섬의 아우성'의 시(2)

by 김창집1 2026. 2. 14.

 

♧ 동백꽃 지고나면

 

내 마음 어딘가에 봄볕이 깔리네,

밭담 위에도 보시시 봄 햇살 내리고

종다리 노래 지즐 대면

한라산 들판에 수노루 짝사랑 찾는 소리

 

땅에선 듯 바다에선 듯

돋아 솟는 봄 향기 따라

봄을 맞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면

땅위로 번지는 선연한 색깔

 

아직도 섧고도 사무친 기억들이

낙화된 동백꽃에 맺히면

가슴엔 그 시절 애달픈 기억.

파란 봄 하늘아래 울다 지친 가슴들이

다시 또 4월을 맞이하네.

 

 

 

♧ 섬의 아우성

 

3월 봄바람이 악동처럼 눈보라 회오리로

봄을 시샘할 때 섬은 가파른 계절의 파고에

흐르던 숨을 잠시 멈추고 하얀 계절로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으로 빠져든다.

 

나뭇가지마다 연두빛 새순들이

봄의 성숙을 기다리는 숨죽인 아우성

 

쪽빛 바다가 느닷없이 흰 이빨로

섬의 가장자리를 할퀴며 아우성치고

 

장대한 거목들이 팔뚝 휘저으며

장중한 소리로 아우성치며

 

이웃 담장너머 살긋한 매화가

꽃피우며 아우성치는……

 

초봄 시샘바람에 접어들 수 없는

격렬한 저항의 아우성,

 

섬 안은 온통 꽃샘바람에 저항하는

아우성 천지가 되면서

바닷가서부터 산의 정수리까지

고통이라 할 만큼의 열정으로 생명의

녹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 곤을동 지나며

 

여기 눈물 얼룩진 제주4.3 흔적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네

 

화북동 별도봉 기슭에

고요하게 누워 있는 곤을동 마을의

그 옛날 집터엔

동네 사람들은 간 곳이 없고

하얗게 핀 찔레와 쑥부쟁이가

마치 동네사람들마냥

연둣빛 5월의 동네를 지키고 있다.

 

무자년 그날 계엄령

초토화 작전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한 마을은

먼 세월에도 검게 그을린 현무암 울타리와

주춧돌만이 그날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와 그 살벌한 시대를 가늠해 보지만

세월의 수레바퀴에

감기며 사라져간 마을의 역사 앞에 서면

목이 메여 눈물 나고나 눈물 나고나.

 

 

 

♧ 봄 동산에 흐르는

 

봄 동산엔 누가 가꿔주지 않아도

클로버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동산에 앉아 클로버 가락지를 주고받던

어릴 적 소꿉친구,

그 소녀는 지금 어디서

나처럼 속절없이 늙어갈까

 

옛날도 이젠 너무 멀리 가버렸다

 

아른아른 돋아 솟는 까까머리 동심

클로버 꽃 무성한 동산엔

아득히 가버린 시간들이

여울지는 뻐꾹새 울음 타고

봄 하늘

새털구름마냥 한가로이 흐르는데.

 

 

 

♧ 사랑의 계절

 

일곱물 사리 만조를 이룬 정오의 산짓내*

환한 봄날 잔물결 일렁이며

심오한 사랑의 끈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얼마나 좋았으면 혼인기를 맞은

성숙한 숭어들이

찬란한 은빛 배때기 공중으로

발딱발딱 뒤집으며

제주를 넘다가

혼인의 정을 나누고 있잖은가,

 

그간 바다에서 보내다

이 봄에 사랑의 영혼 흩뜨리지 않고

담수와 바닷물이 섞이는

깊고 물 맑은 개천을 찾아온 저들

지구의 공간을 채워갈

푸른 사랑에 은빛 물살을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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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짓내 : 제주시 건입동 소재, 제주항과 연결된 개천.

 

 

                       *김창화 제5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