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백꽃 지고나면
내 마음 어딘가에 봄볕이 깔리네,
밭담 위에도 보시시 봄 햇살 내리고
종다리 노래 지즐 대면
한라산 들판에 수노루 짝사랑 찾는 소리
땅에선 듯 바다에선 듯
돋아 솟는 봄 향기 따라
봄을 맞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면
땅위로 번지는 선연한 색깔
아직도 섧고도 사무친 기억들이
낙화된 동백꽃에 맺히면
가슴엔 그 시절 애달픈 기억.
파란 봄 하늘아래 울다 지친 가슴들이
다시 또 4월을 맞이하네.

♧ 섬의 아우성
3월 봄바람이 악동처럼 눈보라 회오리로
봄을 시샘할 때 섬은 가파른 계절의 파고에
흐르던 숨을 잠시 멈추고 하얀 계절로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으로 빠져든다.
나뭇가지마다 연두빛 새순들이
봄의 성숙을 기다리는 숨죽인 아우성
쪽빛 바다가 느닷없이 흰 이빨로
섬의 가장자리를 할퀴며 아우성치고
장대한 거목들이 팔뚝 휘저으며
장중한 소리로 아우성치며
이웃 담장너머 살긋한 매화가
꽃피우며 아우성치는……
초봄 시샘바람에 접어들 수 없는
격렬한 저항의 아우성,
섬 안은 온통 꽃샘바람에 저항하는
아우성 천지가 되면서
바닷가서부터 산의 정수리까지
고통이라 할 만큼의 열정으로 생명의
녹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다.

♧ 곤을동 지나며
여기 눈물 얼룩진 제주4.3 흔적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네
화북동 별도봉 기슭에
고요하게 누워 있는 곤을동 마을의
그 옛날 집터엔
동네 사람들은 간 곳이 없고
하얗게 핀 찔레와 쑥부쟁이가
마치 동네사람들마냥
연둣빛 5월의 동네를 지키고 있다.
무자년 그날 계엄령
초토화 작전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한 마을은
먼 세월에도 검게 그을린 현무암 울타리와
주춧돌만이 그날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와 그 살벌한 시대를 가늠해 보지만
세월의 수레바퀴에
감기며 사라져간 마을의 역사 앞에 서면
목이 메여 눈물 나고나 눈물 나고나.

♧ 봄 동산에 흐르는
봄 동산엔 누가 가꿔주지 않아도
클로버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동산에 앉아 클로버 가락지를 주고받던
어릴 적 소꿉친구,
그 소녀는 지금 어디서
나처럼 속절없이 늙어갈까
옛날도 이젠 너무 멀리 가버렸다
아른아른 돋아 솟는 까까머리 동심
클로버 꽃 무성한 동산엔
아득히 가버린 시간들이
여울지는 뻐꾹새 울음 타고
봄 하늘
새털구름마냥 한가로이 흐르는데.

♧ 사랑의 계절
일곱물 사리 만조를 이룬 정오의 산짓내*
환한 봄날 잔물결 일렁이며
심오한 사랑의 끈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얼마나 좋았으면 혼인기를 맞은
성숙한 숭어들이
찬란한 은빛 배때기 공중으로
발딱발딱 뒤집으며
제주를 넘다가
혼인의 정을 나누고 있잖은가,
그간 바다에서 보내다
이 봄에 사랑의 영혼 흩뜨리지 않고
담수와 바닷물이 섞이는
깊고 물 맑은 개천을 찾아온 저들
지구의 공간을 채워갈
푸른 사랑에 은빛 물살을 튄다.
---
*산짓내 : 제주시 건입동 소재, 제주항과 연결된 개천.
*김창화 제5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계간 '제주작가' 2025년 겨울호의 시(3) (0) | 2026.02.16 |
|---|---|
| '애월문학' 2025 제16호의 시(3) (1) | 2026.02.15 |
| 홍해리 시집 '네가 찾아온 날 나는 내게 없었다'의 시(5) (0) | 2026.02.13 |
| '한수풀문학' 2025 제20호의 시(2) (0) | 2026.02.12 |
| 강연익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8) (1) | 2026.02.11 |